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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6일 금요일

지리산펜션- 남원테마여행-역사코스


신라 경덕왕 16년(757년) 때 처음 "남원" 이라 부르기 시작해 지금까지 1300여년 동안 같은 이름으로 불리워져 온 남원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곳곳에 귀한 문화유산들이 산재해 있는 전통의 도시이다. 

1) 광한루원 
광한루원은 천체 우주를 상징하여 조성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 누원이다. 광한루를 중심으로 영주(한라산), 봉래(금강산), 방장(지리산)을 뜻하는 세 개의 삼신산이 있는 호수와 오작교가 있다. 광한루원에서 "광한루", "청허부", "완월정", "춘향사당", "월매집", "춘향관" 등을 둘러 볼 수 있다. 





2) 만인의총 
정유재란(1597년) 때 남원성 전투에서 왜군에 대항하여 순국한 민, 관, 군 등 1만여 명의 시신이 묻힌 묘이다. 





3) 남원성 
통일신라 신문왕 때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며, 규모는 둘레 3.5 Km, 높이 5.4 m이다. 동서남북 4대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북벽의 일부만 남아 있다. 





4) 만복사지 
만복사지는 정유재란 때인 선조 30년에 왜구에 의해 불타버린 이래 숙종 4년에 정동설이 중창하려 했지만 규모가 너무 커서 예전처럼 복원하지 못하고 돌보는 이가 없어 폐사가 되었다가 전북대학교 주관으로 1979년부터 1985년까지 7년간 걸친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고 사역의 정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만복사는 동국여지승람에 고려 문종때 창건되었다는 기록이 있어 고려 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살아 있는 남자인 양생과 죽은 처녀의 애틋한 사랑을 그린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을 무대로 지은 한문 단편 소설인『만복사 저포기』의 내용은 불교 소설로 젊은이의 사랑 이야기를 절절이 담고 있다. 원본은 전하지 않고 일본 도쿄에서 목판본으로 간행된 그 단편 소설집 금오신화에 실려있다. 





5) 교룡산성 
교룡산성은 남원지역 20여개의 산성 중 그 형태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성으로 백제 때 신라와 대적하여 처음 쌓았다고 전하며 고려 말 이성계 장군이 왜구를 맞아 싸웠고 임진왜란 당시 승장 처영이 크게 수축하였다.
현지 성내에는 선국사 등 문화재가 있고 교룡산을 중심으로 한 국민 관광지가 개발되고 있어 고장의 역사를 배우는 시민 휴식공간으로 활용되고있다. 





6) 선원사 
선원사는 신라 49대 헌강왕(875년) 원년에 신라 말 고승 道詵國師가 창건하였다. 그가 선원사를 짓게 된 까닭은 주산인 백공산은 지극히 약하고 객산인 교룡산은 산세가 강대하므로 남원이 크게 발전하지 못할 거라고 예언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복사, 만복사, 선원사를 짓되 선원사는 백공산 날줄기의 끝에 세웠다. 선원사의 정문현판을 "萬行山禪院寺"라 쓴 것도 알고 보면 백공산의 모체가 천황봉하 만행산 줄기이므로 만행산의 큰 힘으로 교룡산을 눌러 보자는 의도에서 이와 같이 호칭한 것이라 한다. 





7) 창주서원 
조선 선조 때 대사간을 지냈으며 효성이 극진했다고 전해지는 옥계 노진의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노진이 지은 옥계집에는 춘향전의 근원설화로 여겨지는 노진설화가 실려 있다. 





8) 여원치 
해발 450m인 여원치는 연재라고도 한다. 기원전 삼한시대 마한의 별궁이 있었다는 전설과 그 궁터가 남아있는 아름다운 계곡 여원치(Yowonchi) 마애여래불에 얽힌 여인의 정절에 대한 이야기, 호국혼의 전설을 간직한 아흔아홉 구비의 고개, 정상의 주지봉 산신단에 소원을 빌면 누구의 소원이든 한 가지는 들어 준다는 수많은 전설은 먹고 사는 곳이 바로 이곳 여원치이다. 여원치는 섬진강 상류가 있으며, 이 섬진강 상류를 끼고 남원시의 시가지가 펼쳐진다. 그리고 여원치는 남원의 10경에 선정되어 있다. 남원 10경 "구룡계곡, 여원치의 석양, 광한추월, 세걸산의 연봉, 교룡낙조, 반야봉 낙조, 만복대 갈대, 뱀사골 옥류와 단풍, 춘향과 이도령" 





9) 운봉석장승 
운봉읍 서천리 운봉읍사무소 옆 당산에 한 쌍의 돌로 만든 장승이 있다. 어느 때 세워진 것인지 연대는 미상으로 둘 다 눈이 불거지고 코가 뭉뚱그려져 있고 치아를 드러내 보이고 턱밑에 수염을 조각한 것이 특색이다. 이 석장주에 공을 드리면 아이를 못난 여자가 생남, 생녀학 되고 이 고을의 모든 재난과 천재지변을 막아준다는 신앙의 대상물로 예로부터 운봉을 잡귀로부터 지키기 위한 수호신이다. 그중 방어대장군은 남편을 진서대장군은 아내를 상징한다고 한다. 





10) 황산대첩비 
고려 말 이성계 장군이 노략질 하는 왜구를 토벌한 장소를 기리기 위해 선조 10년(1577년)에 세워졌다. 당시 왜장 아지발도가 이성계의 화살에 맞아 죽을 때 흘린 피가 붉게 남아 있는 바위를 피바위라 부른다.(남원에서 함양 방면으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운봉읍에 위치하고 있다) 





11) 동편제 탯자리 
동편제의 창시자인 가왕 송흥록이 태어난 곳. 선생이 돌아가신 후 무덤에서는 "내 소리 받아가라" 는 귀곡성이 그치지 않았다고 하며 2000년부터 국악성지가 조성된 곳이다. 





12) 피바위 
왜장 아지발도가 이성계의 화살을 맞고 죽을 때 흘린 피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다. 





13) 백장암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원래는 백장사였다고 한다. 1679년(숙종 5)에 화재를 당하자 대중이, 백장사는 10년 동안에 두 번이나 화재가 일어났고 장소도 협소하니까 실상사 옛터에다 재건하자고 하였다. 따라서 백장사 터에 몇 간의 작은 건물을 지어 백장암이라 하였다. 1868년(고종 5) 10월에 제3차 화재를 당하였고, 그 다음 해에는 운월대사가 아래에 있던 터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1901년(광무 4)에 제4차 화재를 당하였고, 다음 해에 남호대사가 완봉, 환월, 월허, 영담 등과 협력하여 다시 세웠다. 이 백장암은 목조 맞배지붕으로 된 광명전과 선실이 있고, 광명전 위에 문수전이 있다. 이 광명전은 1910년에 건립되었으며, 선실은 1972년에 지옹선사가 증축하였다. 백장암에는 국보 제10호인 백장암 3층 석탑, 보물 제40호 백장암 석등, 조선시대 부도군 등이 있으며, 관련 유물로는 보물 제420호 백장사 만력12년명 은입사향로가 있다. 





14) 실상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창건은 통일신라시대인 828년(흥덕왕 3) 홍척(洪陟)이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데서 비롯된다. 선종(禪宗)이 처음 전래된 것은 신라 제36대 혜공왕(惠恭王) 때인데, 발전을 못하다가 도의(道義:道儀)와 함께 입당(入唐), 수학하고 귀국한 증각대사(證覺大師) 홍척이 흥덕왕의 초청으로 법을 강론함으로써 구산선문 중 으뜸 사찰로 발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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