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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8일 일요일

지리산펜션-지리산 중산리 빨치산 토벌전시관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519-2번지 관광단지내(주차장) 좌측편에 자리 잡고 있는 지리산 빨치산 토벌전시관은 한국전쟁 발발을 전후하여 지리산을 중심으로 암약한 "빨치산"의 활동상과 그 토벌 현장을 코스별로 생생하게 재현한 살아있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전시물로는 적성장비,장갑차,야포,테마조각상 등을  제1~3 전시실과 야외에 전시해 놓았다.
빨치산(러시아어:partizan) 적의 배후에서 통신,교통 시설을 파괴하거나 무기나 물자를 탈취하고 인명을 살상하는 비정규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6·25 전쟁 전후에 각지에서 활동했던 공산 게릴라를 말한다.
 전시관 입구의 천상병 시인의 귀천(歸天) 시비(詩碑)전경
귀천(歸天)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령들의 넋을 그리는 듯한 시를 암송하다 보면 영령들의 숭고한 애국애족 정신에 숙연해 진다.
 전시관 입구의 원두막형 휴식소
 지리산 빨치산 토벌전시관 입구 전경
  내부 입구에서 바라본 전시관 전경
 전시관 내부입구의 미국산 N4A3 탱크와  M113 A.P.C 장갑차 전경
 육박전 조각상 광경
 화랑무공훈장 수상자 경위 권영도 동상
 동상 후면의 경위 권영도님의 수훈 내용
 ☞.숭고한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자신의 한목숨을 나라를 위해 초계와 같이 희생시킨 권영도 경위님께 경의를 표합니다.
 부상당한 아군의 조각상
 전쟁에 지친 모자 조각상
 아군과 적군의 화해 조각상
적성장비 소련제 37mm 개공포,76.2mm곡사포와 120mm박격포 전시전경
 전시관 전경
 전시관 입구 전경
 전시관 내부 전경(좌측)
  전시관 내부 전경(우측)
 빨치산 수색 미니어쳐(miniature)#1
 빨치산 은거광경:미니어쳐(miniature)#2
 전시중인 쏘련제 자동화기(따발총)
※.제 1전시실에는 소총,대전차총,각종 기관총,박격포등이 전시되어있고 제2전시실에는 각종 권총,단검,육상단도,지도 등이 전시되어 있으며 제 3전시실에는 북한 화폐,증명서,필름,나침의,각종 야영 도구 등이 전되어 있다.
 전시장에서 야외 전시장으로 나가는 동굴(터널)
※.이곳을 지나면 재현아지트물인 민가.초막,암반굴 등이 있다. 
재현한 민가 아지트 전경
지리산 내원골에 있는 민가의 구들장을 교묘히 이용한 아지트였다.토벌대(군,경)검문,검색을 하면 아궁이의 솥단지를 들어내고 방그래를 통해 구들장 밑으로 숨은 뒤.아궁이에는 다른 곳에서 태운 재로 소복히 덮너 놓고 솥에는 뜨거운 물을 채워 토벌대의 눈을 속여 은신처로 이용하였다.1963년 11월 12일 새벽 1시경,잠복 중이던 산청 경찰서 경찰관 2명이 이홍이를 현장에서 사살하고,정순덕을 오른쪽 다리에 관통상을 입혀 생포함으로써 지리산 빨치산 토벌작전이 막을 내린 곳이다. 
정순덕(鄭順德(여), 1933년 6월 ~ 2004년 4월 1일)은 한국 전쟁 중 지리산에서 조선인민유격대 여성대원으로 활동한 대한민국의 비전향 장기수이다.그는 경남 산청군 삼장면 내원리 출신으로, 1950년 10대 후반의 나이에 성석근과 결혼했으나, 한국 전쟁 중 조선인민군이 이 지역을 점령했을 때 도왔던 남편이 대한민국 국군을 피해 조선인민유격대에 입대하면서 결혼 몇 달 만에 헤어지게 되었다.1951년 2월에 남편을 찾아 겨울옷을 챙겨들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20여 일 동안 같이 지낸 끝에 성석근이 사망하자 유격대에 합류하여 빨치산으로 활동했다. 남성대원인 이홍이와 함께 1963년까지 체포되지 않아 '마지막 빨치산'이 되었다.1963년 11월 12일 새벽에 생가 근처인 지리산 내원골에서 체포되었다. 이때 함께 있던 이홍이는 사살되었다. 체포 당시 총상을 입은 다리를 절단하고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아 수감 생활을 하다가 1985년 석방되었다. 수감 기간은 약 23년이며 이 기간 중 전향했다. 석방 후에는 비전향 장기수들이 모여 사는 서울 관악구의 만남의 집에서 살림을 맡았다.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에 따라 그때까지 비전향으로 남아 있던 장기수들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송환될 때 정순택 등과 함께 양심 선언을 했다. 정순덕은 자신의 전향은 고문과 강요가 동반된 전향 공작에 따라 전향서에 강제로 도장을 찍은데 불과했다고 주장했으며, 전향을 취소하고 북조선으로의 송환을 요구했다.그러나 고향이 경남 지역이고 전향서를 쓴 적이 있다는 이유로 송환은 성사되지 않았고, 대한민국에 남아 있다가 2004년 인천에서 사망했다.
 초막아지트 전경
빨치산들이 산속에서 가장 쉽게 조성하여 생활했던 초막아지트 형태는 원두막형태(네모꼴)와 움집형태(원뿔형)로서 수목류와 억새,산죽 등으로 즉석에서 지어 생활하였다.초막아지트는 기본적으로 빨치산들이 먹고 자는 주거로 이용하였고,또한 정치학습을 받거나 주요한 작전을 짜기도 하였다.
 암반굴 아지트 전경#1
8부 능선의 위치에 자연적으로 조성되어 있는 이 암반굴은 높이 1.5m,깊이4m,폭 3m 정도의 크기로 20여명 정도가 이요할 수 있는 공간이다.동굴 안쪽에서는 물이 나며,바깥쪽은 지대가 높아 경계와 은신하기가 좋은 곳이다.빨치산들이 이동할 때는 맨 높은 능선보다는 7~8부 정도의 능선으로 이동하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었다.
 암반굴 아지트 내부 전경#2
 암반굴 아지트 앞 잔디원의 석조물
 전시관 앞에서 바라본 입구쪽 전경 [2010.8.18(수)Canon撮影]
관람 후기 지리산의 천황봉을 오르기 위해 일반 시외버스(진주)의 마지막 주차장인 이곳 중산리(두류동)에 한국전쟁 비극의 유산인 빨치산의 실체를 체험할 수 있는 지리산 빨치산 토벌전시관이 있다는 사실조차 소인을 비롯해 모르는 지역민들도 많다.더구나 타지의 방문객이야 그냥 지리산 천황봉을 오르고 하산하여 이곳 정류장에서 장시간 시외버스를 기다리다 귀가길에 오르는 경우가 허다 하다.안보의식이 미흡한 결과라기 보다 전시관에 대한 홍보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주차장 주변 어디를 보아도 한편 구석에 있는 이곳 전시관에 대한 안내 표지판 하나 없다.빨치산 토벌체험 코스가 4코스까지 설정되어 운용되고 있음에도 말이다.위의 관람기와 같이 과거 세대에게는 아픈 추억을 되새겨 유비무환의 의지를,자라나는 후세들과 장청년들에게는 훌륭한 안보교육장으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많은 분들이 관람하시기를 권유합니다.




지리산펜션:지리산 대호펜션 063)625-4051  010-9553-5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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