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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7일 일요일

지리산 남부 드라이브코스:ㅈ리산펜션

 *화개장터
 *쌍계사
 *석주관



 *운조루
 *섬진강변
 *천은사
*노고단

지리산 남부_ 하동 화개 전남 구례

섬진강과 지리산의 완벽 궁합



화개면은 경상남도 하동군에 속하지만 19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전라남도 구례와 맞닿아 있다. 섬진강을 경계로는 광양시와 이웃하고 있으니 조영남의 노래 그대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가로지르는’ 섬진강 하류의 절묘한 곳에 위치한 셈이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 중 하나였던 화개장터는 지리산 화전민들의 산나물과 내륙지방 사람들이 가져온 쌀과 보리 등이 거래되었던 곳이다. 뱃길을 이용한 수산물도 쉽게 구입할 수 있었으니 닷새에 한번 이곳에서 열렸을 번잡한 장터의 모습이 쉽게 그려진다. 그러나 지금은 화개나 인근 지역 사람들에겐 그닥 인심을 얻지 못하고 관광객을 위한 허울뿐인 장터로 남아 있는 게 전부다.



화개에서 5km 거리의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3년(724) 의상대사의 제자 삼법이 창건한 명찰이다. 기록상으로는 삼법이 세운 옛 절터에 진감선사가 새로이 세웠다고도 한다. 처음에 옥천사라 이름한 것을 정강왕 시절 진주땅에 또 다른 옥천사가 있어 ‘쌍계’라는 이름을 내렸다. 경내에는 불교음악 범패를 교육하던 팔영루, 스리랑카에서 가져온 석가의 진신사리를 봉안해 세운 구층석탑,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최치원이 쓴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 제47호), 고려시대 마애불 등이 있다.



화개에서 구례 방향으로 약 5.8km를 달리면 진행 방향 오른쪽으로 석주관 칠의사묘가 보인다. 석주관은 예로부터 마한과 진한, 백제와 신라, 경상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선 곳으로 허물어진 성터가 남아있기도 하다. 조선 선조31년(1598) 정유재란 때 진주에서 올라온 왜군이 석주관으로 쳐들어오자, 구례 출신 선비 왕득인•이정익•한홍성 등이 수백의 의병을 모아 싸우다 순절했는데, 이들의 충절을 기려 고종5년(1868) 이곳에 칠의단을 건립했다.



석주관을 나와 5분쯤 달리면 역시 오른쪽으로 ‘지리산 반달곰이 살고 있는 곳’ 문수사의 커다란 안내판이 보인다. 마을을 통과해 약 7km 산길을 올라서는 불편이 있지만 산중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문수사의 여름 공기는 상당히 상쾌한 편이다. 다만 2001년 겨울 태어난 반달가슴곰이 붉은 철창에 갇혀 엎드린 모습이 제법 안쓰럽게 다가선다. ‘곰에게 먹이를 주지 말라’는 안전경고와는 달리 곰먹이로 쓰일 과일을 몇 천원에 판매하는 것도 사찰 분위기완 어울리지 않는다. 문수사 인근에는 펜션 혹은 카페로 보이는 건물 두어 채가 신축 공사 중이다.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모양인데 아직은 구불구불 시멘트 좁은 도로여서 운전실력이 미흡한 사람은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게 낫다. 능숙한 운전자라도 교차 통행시 어려움이 많으므로 방어운전에 신경써야 한다.



문수사를 내려와 오미리로 들어서면 호남의 대표적인 양반집 운조루에 닿는다. 우리나라 3대 명당 중 하나로 꼽히는 오미리는 금환락지 땅으로도 알려져 있다. 1776년 무관 유이주(1726~1797)가 지은 건물로 조선시대 양반 가옥의 전형을 보여준 것을 인정 받아 중요민속자료 제8호로 지정돼 있다. 집앞엔 입장료가 1000원임을 알리는 안내판이 붙어 있지만 구멍가게에서 봄직한 플라스틱 의자만 솟을대문 앞에 쓸쓸히 누워 있고, 매표를 하는 사람도 집안을 건사하는 사람도 없이 한적하기만 하다.



운조루를 나와 냉천삼거리에서 우회전하면 전주~순천을 잇는 4차선 산업도로다. 일단 이 도로로 진입해서 천은사 이정표를 보고 다시 우회전하면 구한말 절조 있는 삶과 죽음으로 일생을 마친 우국지사 매천 황현(1855~1910)의 매천사당이 나온다. 그대로 진행하면 천은사에 닿는데, 냉천삼거리부터 치자면 약 8.6km다. 천은사 직전 매표소에서는 1인당 3200원씩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이 매표소는 지리산 다른 매표소에 비해 산꾼들의 입방아에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곳이다. 천은사 입구가 아닌 도로변에 있어 천은사를 방문하지 않고 성삼재로 올라가는 모든 차량에게도 문화재관람료를 포함한 입장료를 받는 것이 문제가 된 것. 실제로 몇 해 전 참여연대의 한 회원이 천은사를 상대로 “지리산국립공원 입장료와 천은사 문화재관람료를 한꺼번에 징수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문화재관람료 반환 소송을 낸 적이 있을 정도다.



차량으로 휭하니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천은사는 천덕꾸러기 사찰에 불과하지만 마음 먹고 들려보면 천은사 특유의 호젓함이 두 눈을 사로잡는다. 소나무 그늘이 드리운 일주문 현판에는 ‘지리산 천은사(智異山 泉隱寺)’ 글씨가 마치 흐르는 물처럼 세로 두 줄로 누워 있다. 천은사는 흥덕왕 3년(828) 인도 승려 덕운조사가 창건했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이슬처럼 맑고 차가운 샘물’이 있어 감로사라 했는데, 천은사로 이름을 바꿔 중건된 건 조선 숙종 4년(1678)이다.



성삼재(1090m) 도로는 심원~달궁으로 이어지는 약 37km의 구간 포함 원래 군사작전 도로였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 별로 쓸모가 없어지면서 폐도로 버려져 있다시피 한 것을 국가에서 지리산 관광개발을 위해 지난 1988년 개통시켰다. 이곳에서 노고단까지는 약 4.7km로 왕복 1시간 30분쯤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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