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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3일 수요일

지리산펜션:지리산도보여행

지리산자락 도보여행 1.
거기 그곳, 지리산의 핏줄로 태어난 땅들

성삼재~산내(실상사)~마천~휴천~금서(구형왕릉)~향양~밤머리재~명상삼거리

 백두대간 가장 마지막에 중심축처럼 솟은 지리산은 우리나라 산악의 대표성과 상징성 그리고 역사성을 고루 갖춰 ‘민족의 영산’으로 불린다. 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 약 471㎢에 두루 걸쳐, 천왕봉(1915m)•반야봉(1751m)•노고단(1507m) 등의 봉우리를 비롯해 25.5㎞의 주능선 상에 해발 1000m가 넘는 준봉들을 연이어 거느리고 있다.

산이 높으면 골도 깊은 법. 각각의 봉우리마다 칠선•한신•뱀사골•피아골•도장골•목통골•대성골 등의 청정계곡을 품고 있으며, 주능선을 중심으로 각각 남북으로 큰 강도 흘러내린다. 함양과 산청을 거쳐 진주 남강이 되는 엄천강 물줄기와 진안 데미샘을 출발해 광양 망덕포구에서 짠물과 몸을 섞는 섬진강, 그밖에 경호강, 횡천강, 덕천강에 이르기까지….

산자락 곳곳에는 화엄사•연곡사•천은사•쌍계사•실상사•대원사•칠불사•벽송사 등의 명찰들이 들어서 있으며, 녹차 시배지(경남 하동)와 문익점 면화시배지(산청)도 있어 역사와 문화와 섭생의 적절한 합일체가 된다. 박경리 소설 <토지>, 김동리 소설 <역마>,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 이병주 소설 <지리산>, 최명희 소설 <혼불>, 이성부 시집 <지리산> 등도 이 곳을 모태 삼아 태어났고, 심지어 흥부와 춘향이와 변강쇠의 고장이며, 지리산 곁의 곡성은 심청의 마을로 통하기도 하니, 지리산군은 산행과 문화와 역사체험을 한번에 체득할 수 있는 ‘멀티플렉스 산악지대’라 할 것이다.

그러니 지리산을 산행의 대상으로 한정해선 곤란하다. 아니, 산행만으로도 평생을 걸려 다 알지 못하는 곳이지만 한번쯤, 살면서 딱 한 번은 지리산 둘레를 두 발로 온전히 걸어보며 그 산에 기대어 사는 민초들의 고단한 삶과 오래 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어 선 문화재들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할 터.

지리산 둘레는 대략 800리, 너른 도로를 기준으로 약 200㎞이며 임도를 따를 경우 165여㎞까지 걷는 거리를 줄일 수 있다. 1구간은 서쪽 성삼재(전남 구례군)에서 시작해 전북 남원시 달궁~반선~산내를 거친다. 이후 도계를 넘어 경남 함양군 마천~휴천, 산청군 금서를 지나 동쪽의 밤머리재 아래 명상삼거리까지 지리산 북쪽을 감아 돈다. 다음 달에 걷게 될 2구간은 명상을 출발 삼신봉터널 통과 후 하동군 청학동으로 진입, 하동에서 구례를 거쳐 첫 출발점인 성삼재를 오르는 것으로 마칠 예정이다.


첫째 날   성삼재~달궁(쟁기소)~반선
청정 계곡의 상징, 달궁과 뱀사골

낮 12시 20분, 구례를 출발해 성삼재(1090m)로 떠나는 군내버스는 송곳 하나 세울 틈도 없이 승객들로 빼곡하다. 발 옆에 엉거주춤 세워둔 배낭은 구비구비 고갯길을 돌아설 때마다 자꾸만 앞뒤로 움직이며 요동 친다. 누군가의 배낭에서 잘 익은 김치냄새가 난다. 징검다리 연휴를 앞둔 터라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나 좌석에 비스듬히 등을 기댄 승객이나 여느 때완 달리 다소 들떠 보인다.

도착지는 모두 성삼재. 대부분 주능선 종주 등 산행에 목적을 두었을 테지만 그 고갯마루에 내려 나흘간의 도보 일정을 이어갈 이는 나와 부산에서 출발한 현주(P양) 뿐. ‘한 번은 걸어야 할 일’이라 위로하지만 산속으로 사라지는 등산화의 둔탁한 발자국 소리에 자꾸만 시선이 간다. 우리에게 할당된 아스팔트는 지열로 이글이글 끓어 올라 달걀이라도 톡- 떨어뜨리면 그대로 익혀버릴 태세다.

심원~달궁으로 이어진 861번 도로(약 37㎞)는 원래 군사작전용이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뒤 별로 쓸모가 없어지면서 버려지다시피 한 것을 국가에서 지리산 관광개발을 위해 지난 1988년 개통 시켰다. 얼마 전 끝난 5.31 지방선거에서도 벽소령 아래 모 마을, 모 후보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벽소령 산간 임도를 포장 해주겠다’ 공약을 내세웠다만, 언젠가 세월이 흐르면 지리산 한중간에도 성삼재 같은 아스팔트 도로가 뚫릴지 누가 알겠는가. 가슴에 훅- 불이 붙는다. 아스팔트 열기에 머리가 아프다.

성삼재는 주능선 종주 시작 지점인 노고단 턱밑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높은 고갯마루에서 시작해야 첫날의 무리한 진행을 막을 수 있어 도보여행 출발점으로 제격이다. 그러나 정작 성삼재에 서면 방송국 중계탑을 머리에 얹은 노고단보다 주능선 한쪽으로 다소곳이 비껴선 반야봉의 위용이 더 무겁게 가슴 한쪽을 압박해온다.

성삼재를 출발 40분 후쯤, 간이 매점인 ‘심원쉼터’에 닿는다. 그 옆 샘물에 배낭을 내리고 앉았는데 지나던 관광버스 한 대가 샘 가까이 차를 대더니, 우르르- 아주머니 한 무리가 내린다. 마치 샘터를 만날 걸 알기라도 한 것처럼 손에는 모두 플라스틱 물병. 아주머니들이 물을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데, 도로변에 있던 돌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넘어지신다. 아주 순간적이었는데 찢어진 바지 사이로 무섭게 쏟아지는 피…  구급약을 챙겨와 치료하기 분주한데, 그 와중에도 어떤 일행은 ‘비싼 약’을 강조하며 조금만 바르라고 신신당부다. 거참.

동네 전체를 철거하니 마니,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심원마을(750m) 입구에 닿기 전 보성에서부터 달려온 119를 만난다. “쭈쭈바 사와라” 농담처럼 말했는데 정말 사왔다. 현주와 시원하게 먹으며 119 모델 삼아 사진도 찍고(어쩔 수 없는 업무인지라). 119는 갈 데가 있다며 휭- 사라지고(나중에 알고 보니 뱀사골에 잠시 올랐다고), 다시 둘이 된 현주와 나만 두런두런 이야기 하며 길을 잇는다. 도보여행을 통해 처음 만난 사이지만 대화가 잘 통한다.

오후 3시 4분, 정령치와 달궁으로 나뉘는 도계삼거리(730m)이다. 정령치까지는 6.5㎞로 육모정을 거쳐 남원 시내로 길이 이어진다. 지리산자락을 돌기 위해선 달궁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성삼재에서 걸어온 길이 5㎞다. 첫날인데다 고도를 낮추며 내려선 탓에 아직 힘든 줄 모르겠다. 달궁 진입 전 도로 우측의 쟁기소로 내려선다. 계곡에 드리운 철쭉 빛이 아름다워 사진작가들의 발길이 잦은 쟁기소엔 반야봉을 오르는 등산로(8㎞)가 있지만 오는 2015년까진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산행은 금지돼 있다. 철계단을 내려서자, 된장찌개 냄새가 허기진 위를 콕콕- 자극한다.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그러나 부부일 것 같진 않은 남녀가 식사를 권하는데, 정작 한쪽에 놓인 수박이며 참외에 더 마음이 간다. 못 이기는 척 밥에다 된장찌개를 듬뿍 떠 먹으며 권하는 술도 마다하질 않는다. 이러다 음주도보에 걸리는 건 아닌지 걱정, 젊은 시절 이야기(한라산에서 고등학생들 구해준 얘기)를 꺼내 놓으며 40여 분간이나 우리를 잡아두는 중년 사내 앞에서 혹시 불법 취사로 함께 과태료를 물어야 하는 건 아닌지 또 걱정. 법대 교수라고 하던데, 만약 공단직원이라도 출동하면 법 내용을 조목조목 짚어가며 피해가시려나…  “고맙습니다!” 인사를 다급히 건네고 정작 쟁기소 물속엔 손끝 하나 넣어보지 못한 채 황급히 도로로 올라선다. 그제야 조급했던 마음이 풀리며 참았던 웃음이 쏟아진다.

달궁야영장도 색색의 집들로 분주하다. 250여 동의 텐트를 칠 수 있고 오토캠핑도 가능해 여름이면 피서 인파로 북새통이다. 좁은 2차선 도로에 무질서하게 주차 된 차량들과 계곡에 바윗돌처럼 박힌 사람들이 외려 숨통을 죄어오는 터라, 한여름엔 차라리 달궁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달궁과 덕동마을을 지나면 곧 뱀사골 초입인 반선집단시설지구다. 점심 때 성삼재를 떠났으니 더 이상 진행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우측으로 다리를 건너면 약 9.2㎞에 이르는 뱀사골 코스. 2001년에 만든 자연관찰로에서 4월부터 11월까지 매주 토요일 낮 2시, 계곡생태계•명소이야기•숲이야기•수서곤충에 관한 자연해설프로그램을 들을 수 있다. 요룡대에서 막차 위까지 6.4㎞의 계곡 본류는 2010년까지 계곡휴식년제가 실행 중인데, 산행이 금지된 건 아니고 계곡으로 들어가는 것만 금하고 있다.

‘지리산산채식당’에 여장을 푼다. 반선 버스정류장 주변에는 원체 많은 식당들이 밀집해 있어 딱히 한 곳을 정하기 어려운데, 대체로 음식맛 때문에 고생할 일 없을 만큼 솜씨가 좋다. 식당에서 우연히 뵌 무토님(달궁에 카페 모임이 있다고), 뱀사골 산책을 다녀온 119, 내일부터 합류하게 될 강병규(우리산하) 님과 산내에 사는 김현수 님까지 저녁식사 자리가 만원이다. 지리산표 취나물에 흑돼지 삼겹살을 하나씩 얹고 한나절의 노곤함을 잊어본다. 산채식당 최사장님의 배려로 오늘은 식당 2층에서 무료로 잔다. 감사!!!


둘째 날   반선~산내(실상사)~마천~휴천 고정마을
천년 고찰을 뒤로 하고

얼굴이 다소 푸석했지만 몸 컨디션은 생각보다 좋다. 민박촌으로 이뤄진 부운마을과 유난히 굿당 많은 개선마을을 지난다. 현수님 말로는 이 일대 어느 남자 무당이 귀신을 쫓겠다며 여자 의뢰인을 물속에 넣고 빼는 반복 과정에서 그만 그녀를 죽게 했다던가. 이른 아침 솔숲에서 흐르는 호랑지빠귀 소리는 쓸쓸한 영혼이 불어대는 휘파람 같다. 뱀사골로 진입하는 내령매표소를 거꾸로 돌아나서면 곧 팔랑마을 입구에 닿는다. 이곳에서 바래봉까지는 약 2㎞. 매년 5월 중순이면 바래봉 일대를 붉은 빛으로 수놓는 꽃물을 보기 위해 저 건너 운봉과 정령치는 물론 이곳 팔랑을 통해 바래봉을 오른다. 아니, 정확히 말해 바래봉 철쭉은 팔랑치 일대에 집중적으로 피어 있으니, 어쩌면 팔랑마을이야 말로 바래봉 철쭉의 가장 중심에 서있어야 할 곳인지도 모르겠다.

아침은 토비스콘도 야영장에서 해먹기로 한다. 서울에서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남원시 산내면, 뱀사골 입구로 이사 온 아마추어 사진작가 병규님의 ‘김치고래탕’이 대기 중이다. 배낭에 고래고기를 넣어왔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낯선 맛에 대한 호기심 때문에 밥이 되기도 전부터 숟가락을 입에 물고 물끄러미 그의 손끝만 바라본다. 코펠 가득 물을 붓고 김치를 넣고 멸치를 넣고, 고래는…  아니, 세상에. 저 말라버린 멸치를 고래라 농담한 것도 모르고, 정말 고래 살점이라도 넣어온 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니…. 바보. 계곡 옆에 자리한 야영장에서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이제 다시 걷는 일에 열중이다.

야영장을 벗어나 2분쯤 걸으면 원천 시내버스 정류장이고 이곳에서 큰 도로를 버리고 우측으로 돌아 마을 길을 따른다. 이 길은 35분 후에 실상사 돌장승 앞에서 끝을 맺는다. 해탈교 입구엔 산나물 등을 판매하는 동네 아낙들이 앉았고, 오가는 관광객 몇이 물건을 이리저리 살피며 가격 흥정에 한창이다. 쑥인절미 한 봉을 사들고 나무 그늘에 앉아 한 입씩 베어문 후에야 실상사 경내로 들어선다.

통일신라 흥덕왕 3년(828) 홍척 증각대사가 창건했다는 실상사에는 다보탑 복원의 전신이 되었다는 두 개의 삼층석탑과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들이 그득하다. 산중 깊은 사찰과는 달리 평지에 세워진데다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국가 지정 문화재를 보유한 곳 중 하나. 무엇보다 반야봉의 그늘에서 벗어난 산줄기가 이곳 산내에서 비로소 천왕봉•중봉•제석봉의 묵직한 그림자 속으로 담겨진다.

능선상에서 바라보는 천왕봉과 그보다 1500m는 족히 키를 낮춘 마을에서 올려다본 천왕봉의 모습은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산내 사람들이 맞는 바람과 비는 모두 천왕봉에서 왔을 터. 실상사 앞 ‘항우공방’에 들러 차가운 매실차로 목을 축인다. 서울의 모 광고기획사에서 근무하다 6년 전쯤 산내로 내려왔다는 조항우 님이 운영하는 찻집으로 주인의 세심한 정성이 손끝마다 묻어난다. 매실차가 보약처럼 세포 하나하나를 자극하는 듯하다.

낮 1시 45분,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이라 적힌 초록색 이정표가 보인다. 남쪽 하동 화개가 경남과 전남의 경계라면 북쪽의 인월과 산내는 전북과 경남의 경계. 일부러 그런 건 아니겠지만 이정표 아래 아스팔트 색도 남원과 함양 사이에서 그 빛깔을 구분하고 있다. 일행의 연장자면서도 가장 짓궂은 병규님이 신기한 걸 보여주겠다며 아스팔트 경계에서 두 발을 번갈아 폴짝인다. 소위 경남과 전북을 순식간에 오가는 일종의 유체이탈. 그야말로 ‘도를 넘어섰다!’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경상도 땅으로 땀에 절은 몸을 옮긴다.

지리산자락 어디든 지리산 산행의 들머리가 되겠지만 함양군 마천은 능선 너머 산청군 중산리와 더불어 천왕봉을 오르려는 사람들로 1년 내내 붐비는 곳이다. 오죽하면 동서울터미널에서 이곳 백무동까지 한번에 오가는 버스, 그것도 밤 12시에 운행하는 심야버스를 배정했을까. 진주나 원지에서 갈아타야 하는 중산리와는 달리 백무동으로 향하는 서울의 지리산꾼들은 서울을 떠날 때 눈을 감고 백무동에서 눈을 뜨면 그만이다. 백무동 기점 5.8㎞에 장터목대피소가 있고(하동바위 코스), 6.5㎞엔 세석대피소가 있다. 특히 세석으로 오르는 한신계곡 코스는 지금 같은 더위엔 제격. 가내소•한신•오층 등의 폭포가 등산로 곳곳에 걸려 주능선으로 향하는 걸음을 몇 번씩 멈추게 할 것이다.

백무동으로 들어서는 가흥교를 지나 ‘방산집’에서 매콤한 비빔국수로 점심을 해결한다. 방산집 앞에는 KBS-TV <이것이 인생이다>에 출연해 일약 스타가 된 ‘소문난짜장’이 있다. 하나뿐인 팔로 자장면 면발을 뽑아내는 솜씨가 일품인데, 외팔이 사장 강상길 씨는 <나의 프로 인생은 끝나지 않았다>라는 책을 출간하기도 했다. 음식점 밖으로 내몰린 대형 배낭들은 노곤한 몸을 햇살에 말리고, 배낭을 벗어낸 산꾼들은 시원한 콩국수를 후루룩- 입안으로 밀어 넣으며 산행 피로를 씻고 있다. 기억할 리는 없겠지만 문밖에 나선 주인장에게 인사를 하고 걸음을 옮긴다. 그 후 ‘방장제일문’이라 적힌 석문을 통과한다.

오후 4시 2분, 의탄교 앞 폐교 등나무 그늘에 앉아 잠시 쉰다. 의탄교를 건너면 칠선계곡이 있는 추성리에 닿는다. 엄밀히 말하면 칠선계곡만 있는 것은 아니다. 2007년까지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산행이 금지된 칠선계곡은 그렇다 쳐도 국골•초암릉•어름터 등의 코스가 천왕봉을 향해 줄기차게 치솟아 있다. 벽송사와 서암도 의탄교 너머에 있다.

오도재 갈림길에서 산청•유림 방면으로 방향을 튼다. 오도재로 올라서면 함양의 금대산~백운산~삼봉산 산행이 가능하다. 원정마을을 지나 오후 5시 용유담 이정표에 닿는다. 함양 군내 등산안내지도가 커다란 얼굴로 도로변에 서있다. 큼직한 바위들이 엄천강을 따라 아무렇게나 흩어져있다. 땀에 찌든 발도 쉬게 할 겸 강가로 내려가 발을 적신다. 생각만큼 시원하진 않지만 발가락 틈을 헤집는 물줄기에 기분이 한결 나아진다.

마을 입구마다 뽕나무 하나씩은 뿌리를 내리고 있어, 까맣게 익은 오디 열매가 바쁜 걸음을 더디게 한다. 배낭을 내릴 생각도 없이 나뭇가지 하나씩을 가까스로 끌어내려 작고 까만 열매를 떼어낸다. 손가락이며 입술 주위가 금세 보랏빛으로 물이 들지만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유쾌하게 웃어보일 뿐, 모처럼 동심으로 돌아간다.

걷는 내내 습관적으로 도로 옆 수로를 본다. 별별 동물들의 잔해가 가득한데, 소위 ‘로드킬’에 희생된 생명들. 크게는 멧돼지부터 뱀, 개구리, 이름을 알 수 없는 새, 그리고…  “저게 뭐지?” 수로 시멘트 위에 어느 동물의 머리뼈가 놓여져 있는데, 영락없이 반달곰이다. 혹시 최근 실종된 반달곰이 있는 건 아닐까 하여, 현수님은 곧바로 지리산생명연대에 전화를 한다. 간혹 살아있는 뱀들이 수로 옹벽 구멍에 긴 몸을 구긴 채 잠이 들어 있다.

견불동 입구를 지나 고정마을에 닿았을 땐 이미 저녁 6시 30분. 진행이야 더 할 수 있겠지만 더 간다 해도 마땅히 숙박할 곳이 없다(현수님 상태가 좋지 않기도 했음). 마침 함양으로 가는 군내버스가 온다. 오늘은 함양읍내 찜질방에서 하룻밤 묵기로 한다. 시원하게 씻을 생각에 기분까지 개운하다. 함양에 들어서니 피자박스를 들고 가는 아가씨들. 새삼 피자 생각이 간절한데, 남자들이 좋아할 리가 없다. 현주는 한 술 더 떠 “피자엔 맥주가 최고”라고 추켜 세운다. 걷는 것도 소용없이 살 찌기 딱 좋은 메뉴다. 그래도 먹고 싶다. 남자들 얼굴빛이 점점 어두워진다. 그냥 알탕인가 대구탕인가를 먹고 찜찔방으로…

아, 오늘은 대한민국과 가나의 평가전이 있는 날. 맥주 대신 시원한 석류 음료를 시켜놓고 티비 앞에 앉지만 저절로 졸음이 온다. 우리가 낮에 본 머리뼈가 정말 반달곰이 맞다면, 그래서 우리가 실종된 반달곰의 사체 중 일부를 찾아낸 거라면, 우린 보상금으로 뭘 받을까. 만약 헬기 한 대를 준다면 어떻게 나눠야 하나…  부질없는 고민과 걱정과 웃음으로 티비 앞에 앉았다가, 스르륵- 잠이 든다. (그거 반달곰 아니란다. 헬기 나눌 걱정은 없겠다).





 셋째 날   고정~엄천강(한남교~자혜마을~화계)~구형왕릉~향양
길 위의 인연들

함양읍내의 아침은 짙은 안개로 가득하다. 여느 도시의 이 시간대라면 출근 준비로 분주한 직장인들로 머리가 아플 텐데, 조그만 소읍의 이른 아침은 안개에 묻힌 이 풍경 그대로 한적하고 스산할 뿐이다. 남자 일행인 병규님과 현수님은 산내로 잠시 돌아가고, 현주와 나는 함양읍에서 마천으로 떠나는 아침 6시 30분 버스를 타고 어제 벗어났던 고정마을로 향한다.

초행인 길이어서 혹시 잘못 내릴까 잔뜩 긴장이다. 고정마을을 지나쳐 내려도 억울하지만 고정마을 한참 못 미처 내려도 애매한 노릇. 어제 신경 써 봐둔 지형지물을 지나 고정마을에 정확히 내린다. 걸음을 내디딘지 20분이나 지났을까. 검은색 지프차를 몰고 가던 운전자가 행선지를 물으며 태워주겠다고 한다. 때론 여행자 곁을 매섭게 스치며 운전하는 이들도 있지만 이렇게 태워주지 못해 몸살을 앓는 이들도 많다. 고맙다는 인사만 전하고 계속 걸음을 옮기는데 이번엔 방향을 바꿔 다시 우리 쪽으로 돌아온다. 아무래도 맘이 놓이지 않았는지 대뜸 “차 한 잔 대접하겠다” 인심이다. 우리가 전날 스쳐온 견불동에서 민박집을 한다고.

산중에서 만나는 이들이 금세 친구가 되고 이웃이 되는 것처럼, 도보여행의 재미도 길에서 만나는 인연 때문에 빛이 나는 법. 낯선 남자의 제의에 움찔할 법도 하다만 일단 그의 차를 얻어 타고 견불동으로 올라선다. 해발 400m쯤 자리한 견불동은 마을에서 건너다 뵈는 능선이 누워있는 부처, 즉 와불을 닮아 ‘부처를 마주한 동네’란 뜻으로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혹은 신라시대에 ‘견불사’라는 절이 있어 그런 이름이 되었다고도 전한다. 고작 10여 가구가 전부지만 그 중 절반 가까이가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그것도 최근 10년 사이에 급격히 늘어난 상태.

검은 지프차 황기윤(42세) 씨의 민박집 ‘운천산방’ 마당은 유독 밝고 따뜻하다. 무릎을 세우고 누운 와불이 몸을 뒤척일 때마다 목 쉰 뻐꾸기가 안쓰럽게 목청을 높인다(사람들 목 갈라져서 삑사리 나는 것처럼 뻐꾸기도 그런 소리를 내더란 사실). 황씨가 대접하는 차를 몇 잔 마시고 견불동을 나선다. 황기윤 씨는 우리를 승차 지점에 떨궈놓고 사라진다. 오늘밤 꼭 와서 묵으라는 인사와 함께.

오전 9시 50분, 소나무 숲이 울창한 ‘나백정’ 옆으로 양파 수확이 한창이다. 그 모습을 촬영하러 밭으로 들어섰더니, 시골 인심이 아직 야박하진 않아서, 동네 아주머니 한 분이 비닐봉지 가득 양파를 넣어주신다. 3박 4일 일정의 배낭이 그리 가벼울 리는 없다만 배낭 속에 양파 꾸러미를 악착 같이 넣어둔다. 딱히 드릴 게 없던 차라 행동식으로 준비한 복숭아캔과 사탕 한 움큼을 아주머니께 내어 드리고 양파밭을 벗어난다. 마천으로 향하는 군내버스 젊은 기사도 엄지를 치켜 세우며 응원을 보낸다.

“길을 걸었지. 누군가 함께 있다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하얀색 찔레꽃 앞에선 찔레꽃 노래를, 바람이 불면 바람의 노래를, 태양이 뜨거우면 태양의 노래를…  현주와 둘이 걷는 오전 일정은 대화와 노래와 웃음과 바지런히 걷는 일의 연속이다.

나백정을 지나 5분쯤 걸어 ‘지리산리조트(055-964-1171)’ 앞을 지나는데, 그을린 여행객들을 그냥 보낼 수 없었던지 리조트 대표 최상두(34세) 씨가 시원한 음료 한 잔을 권한다. 아직 미혼이라는 최대표는 “도로를 걷는 것보단 강줄기를 따라 이어진 마을 속살길이 더 좋을 것”이라며 강 건너 편을 추천한다. 걸었던 길을 3분쯤 되짚어 올라 한남교를 건넌다. 이제는 큰 도로를 버리고 산청군 금서면 화계까지 강변길을 따르게 될 것이다. 10시 37분, ‘빨치산들이 토벌대의 공격을 피해 산죽비트에서 은신했다’는 내용 등이 적힌 노장대 루트 안내판이 보인다.

엄천교에서 산내로 떠났던 일행 중 병규님만 합류한다. 왼쪽으로 자혜마을이 보인다. 모두 양옥인데 홍수 피해로 마을이 쓸리면서 최근에 다시 지은 것이라 한다. 어르신들 모여 사는 시골엔 한옥이 제격이지만 죄다 똑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언뜻 복제된 DNA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자혜마을을 지나면 길은 한결 소박해진다. 남쪽의 섬진강만큼 수려한 맛은 없지만 강원도 동강의 축소판처럼 정겹다. 물속엔 커다란 고기들이 그득하다. 투망을 던지며 고기잡기에 여념인 사람들도 보인다.

낮 12시 32분, ‘세검정가든’ 앞에서 좌회전해 제방 길을 따른다. 10분쯤 이어지던 제방길이 숲으로 막히면서 끊긴다. 제방 아래로 내려가 다시 올라서니 100년은 족히 살았을 느티나무 한 그루가 나타나며 소박한 시가지 풍경이 펼쳐진다. 나무 아래엔 평상 공사가 한창이다. 마을회관으로 보일법한 다방을 마주하고 앉아 배낭을 내리고 점심을 준비한다. 오늘은 라면이다.

왕산(923m)을 보며 흐르던 엄천강은 이곳에서 함양 유림면과 산청 금서면으로 행정구역을 가른다. 전날 야영장에서 아침을 먹으며 코펠을 어디다 두었는지 도통 보이질 않고. 넉살 좋은 병규님은 “뚜껑이 없어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는 노란 냄비를 구해 돌아온다. 냄비 속 라면이 끓는 동안에도 먼지를 일으키며 평상 공사가 진행되고, 오토바이를 탈탈 끌고 오신 어르신들은 신기한 듯 낯선 이방인들을 지켜 보신다. 막걸리를 건네도 좀체 드시질 않으니 우리끼리 홀짝홀짝 더위와 고된 일정에 지친 몸을 녹이는 수밖에. 강 건너 유림 쪽도 보수작업을 하는지 공사 차량만 땀을 뻘뻘 흘리며 먼지 속을 오간다. 해가 높이 뜰수록 햇살은 더 강해진다. 주변 쓰레기를 정리해 자리를 뜬다.

오후 3시, 60번 국도변으로 구형왕릉 입구가 나온다. 함양을 흐르던 엄천강은 이 왕산 밑으로 물줄기를 모으고 있던 터. 길은 왕산~필봉산(848m)을 왼쪽으로 크게 휘돌아 밤머리재까지 이어지지만, 산간 임도를 따르면 힘은 들지언정 덜 지루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다. 일행들과 상의를 하고 임도 길을 따른다. 마침 병규님도 구형왕릉에 가보고 싶다니…  임도만도 대략 12㎞. 거짓말 조금 보태 산행 수준이다.

가락국 마지막 왕 구형왕(521~532 재위)과 왕비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덕양전(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50호)을 지나면 사적 제214호로 지정된 구형왕릉 돌무덤에 닿는다. 돌과 돌을 잇대어 쌓은 것이 마치 피라미드의 축소판 같은데, 무덤 앞에는 ‘가락국 양왕릉’이라 새겨 넣은 비석이 있고, 문인석•무인석•돌짐승•상석•장명석 등이 배치되어 있다. 모두 근래에 만들어진 것이다. 흔히 구형왕릉 앞에 ‘전(傳)’자를 붙이는데 ‘구형왕릉 무덤이라 전한다’는 뜻일 뿐 거대한 돌무더기가 무덤인지 석탑인지도 정확하지 않다고 한다.

전설에 싸인 구형왕릉을 둘러본 다음 허준의 스승으로 알려진 유의태 약수엘 들러본다(따지고 들자면 두 사람은 동시대 인물이 아니란다). 물이 얼마나 찬지 발을 담그고 1분을 앉아있질 못하겠다. 물을 가득 채우고 젖은 발을 정성스레 닦는다. 무엇보다 도보여행에서 가장 고생하는 신체는 발이어서 쉴 때마다 이렇게 씻어주고 주물러주는 것이 좋다.

오후 4시, 약수를 출발 본격적인 임도 걷기에 나선다. 30분쯤 걸으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 포장 내리막을 버리고 왼쪽 비포장 길로 가야 한다. 고갯길 자체의 고도와 구불구불한 흔들림이 힘들기도 하지만 도로를 버리고 흙길을 걷는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된다. 임도 곳곳 역시 뽕나무 천지다. 하루에 한 번씩은 지리산이 주는 자연산 오디로 몸보신이다. 5시 15분, 진행 방향 우측으로 이 임도 상의 유일한 민가가 내려다보인다. 작년까지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주인 내외는 보이지 않고 커다란 개 세 마리만 땀냄새 진동하는 낯선 객들을 향해 매섭게 짖어댈 뿐.

민가를 출발해 10분을 더 가면 다시 갈림길, 여기선 우측으로 향한다. 곧 ‘쌍재’라는 지명이 적힌 안내판을 만난다. 왕산(1.5㎞)과 고동재(2.2㎞)로 나뉘는 산행 기점이다. 덩그러이 황망한 산중 임도여서 누군가 이곳을 등•하산 코스로 잡을까 싶은데, 하긴 이곳 저곳 포크레인이 붉은 핏덩이 같은 황토를 긁어대고 있으니, 딱 1년 후쯤이면 이 부근에도 민가가 여럿 들어설 모양이다.

오후 6시 20분, 드디어 임도를 벗어난다. 구형왕릉부터 치자면 임도만 3시간 이상을 걸었다. 새터•구사촌 도로를 따라 수철리와 나뉘는 향양으로 내려선다. 세상은 벌써 어스름해서 어린시절 이 맘 때쯤이면 “소영아, 밥 먹어라”라고 부르던 엄마의 목소리, 손에 묻은 흙을 털어내며 밥 익는 냄새 고소하던 집으로 뛰어가거나, 부지깽이를 들고 쫓아 나온 엄마를 피해 더 놀던 날의 추억. 해 혹은 볕을 향한다는 향양마을에도 스멀스멀 땅거미가 앉았다.

오늘 일정은 이곳까지다. 숙박은 길이 맺어준 인연, 견불동에서 묵기로 한다. “도보여행이니만큼 절대 호의호식은 없다” 으름장을 놓았지만 견불동으로 향하는 우리들 양손엔 삼겹살에 수박 한 통까지 들려있다. 오늘 밤, 목이 쉬도록 울어대던 뻐꾸기는 또 얼마나 슬퍼하고 있을까.


넷째 날_ 향양~밤머리재~명상삼거리
밤머리재가 나눈 지리산과 웅석봉

견불동에서 구수한 된장찌개까지 얻어 먹고서야 전날 일정을 마쳤던 향양으로 돌아온다. 시간은 벌써 오전 10시 3분. 이곳까지 태워준 운천산방 황기윤 씨에게 감사의 인사, “언젠가 다시 뵙겠다”는 기약할 수 없는 약속을 전하며 밤머리재를 올라선다. 1차 도보여행의 마지막 기착지 밤머리재. 성삼재가 종주산행의 출발점이 된다면 밤머리재는 종주산행의 마지막이라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흔히 중산리나 백무동에서 종주를 끝내지만 지리산 최고봉 천왕봉에서 흘러내린 중봉~하봉 능선은 왕등재와 도토리봉을 거쳐 이곳 밤머리재로 떨어진다. 이 고갯길을 기준으로 서쪽은 지리산국립공원, 동쪽은 웅석봉군립공원에 속한다. 지리산 능선을 태극으로 잇는 ‘태극종주’족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밤머리재를 거쳐야 한다.

밤머리재를 걸어 올라간다는 말에 동네 어르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날씨 걱정부터 쏟아낸다. 오늘이 근래 들어 가장 더운 날이라니, 그러고 보면 하루만 뉴스를 못 봐도 세상과 크게 단절된 느낌이다. 아침 태양이 뜨겁다. 도로변 가로수 그늘 아래 배낭을 내리고 쉬기를 반복한다. 멀리 뒤늦은 밤꽃 향기에 정신이 몽롱하다. 뉘집 과부 속을 절절이 끊으려고 오전부터 이 비릿한 향기는 진동 해대는지….

밤머리재 도로 옆 수로에도 구경거리가 가득하다. 풀숲을 헤치며 몸을 숨기는 꽃뱀. 우리들 발자국 소리에, 혹은 뱀의 미동 소리에 놀라, 다다닥- 도망치는 꿩 새끼들(꺼병이). 너무 작아서 참새처럼 보이는 녀석들은 처음엔 두 마리, 그 다음 네 마리, 그애들 딴에는 풀숲에 숨은 모양인데 우리 눈엔 다 보인다. 앙증맞고 귀엽다.

신세계콘도를 지나 낮 12시 47분 드디어 밤머리재 도착이다. 걷는 내내 호위병처럼 따라붙던 왕산과 필봉산의 근엄한 자태도 지리산에게 그 자리를 넘겨준 채 능선 너머로 사라지고 없다. 최근 생긴 간이매점에서 시원한 냉커피로 목을 축인다. 다소 버거워 하는 현주에게 촐라체(6440m)에서 극적 생환한 박정헌과 최강식 이야기를 들려준다. 손가락 여덟 개를 잃은 박정헌은 현재 실크로드 자전거 대탐사에 참여, 지금쯤 사막 어딘가를 달리고 있을 터. 손가락은 빼앗을 수 있겠지만 그의 가슴 속 열정은 어떤 고난으로도 제거할 수 없는 모양이다.

휴우, 내려가는 일만 남았다. 산청군 시천면(덕산), 밤머리재, 대원사(치밭목대피소 코스)로 세 가닥 길이 나뉘는 명상삼거리가 정확한 도착 지점. 내려가는 길은 한결 수월하다. 그 길이 남쪽을 향하고 있다면 ‘팡고른 숲의 엔트’처럼 기분이 좋아진다. 옹벽 파이프를 통해 나오는 밤머리재 샘물을 목 뒷덜미로 흘려 보내고, 가벼워진 듯한 배낭에 어깨도 들썩들썩 흥이 난다.

홍계 상촌과 북촌 마을을 지나 오후 2시 33분 명상삼거리 도착. 멀리 대원사로 향하는 초록색 버스의 뒤꽁무니가 아스라하다. 떠나온 밤머리재 정상에서 모처럼 바람이 불어온다. 손가락을 쫙- 펼치면 그 사이사이로 지나는, 바람의 간지러운 촉감이 느껴질 만큼. 길은 버스가 사라진 쪽으로 무심히 이어져있다. 이제 지리산 남쪽을 걸을 차례고, 우리에겐 그 길을 걸을 만큼의 열정과 시간과 충분한 체력이 남아있었다. 자, 다시 시작이다.


덧 붙 임.
명상삼거리 근처의 ‘털보농원’에서 백숙으로 뒤풀이 하고 덕산에서 여섯 살 아래의 현주와 헤어진다. 이번 도보여행을 계기로 처음 알게 되었지만 3박 4일간 고스란히 함께 걸어준 터라 이별의 순간이 각별하다. 진주행 버스에 그녀를 태워보내기 전 꼬옥- 안으니 마음이 울컥, 콧잔등이 시큰하다. 산행이든 도보여행이든 누군가 동행이 되어준다는 건…  고마운 일이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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