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시 산내면 와운마을
천년송 비호 아래 나지막한 꿈을 꾸다.
‘설마’하는 안일한 생각 덕분에 오히려 기분 좋은 산책이 되었다. 뱀사골 깊은 골짜기 와운마을까진 차량 통행이 가능한 터라 당연히 자가용으로 오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며칠 전 내린 눈은 반선집단시설지구까지만 말끔히 녹아있고 뱀사골 등산로 진입로부터 쌩쌩한 빙판길을 선보이고 있었다. 눈길에 몇 번 헛발질하던 낡은 차를 반선에 주차해두고 뽀드득뽀드득 유리창 닦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눈길 위에 발을 들여 놓는다.
길은 곧 ‘차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로 나뉘는데, 두 길은 1㎞ 후 다시 만난다. 계곡에 바짝 붙은 ‘사람이 다니는 길’은 2001년에 만든 자연관찰로다. 찻길과 자연관찰로가 합쳐지면 요룡대를 지나 다리 하나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천년송으로 유명한 와운마을,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다
와운마을 가는 길과 천년송
식당가가 밀집해 있는 반선에서 와운은 약 3㎞. 평상시엔 배낭을 메고도 30분 남짓이면 충분하지만 이번처럼 폭설이 내린 날엔 1시간은 족히 걸어야 마을에 닿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이 뱀사골 산행 초입이고, 따라서 좌측엔 ‘한국의 명수’로 꼽히는 청류가 흐르고, 하늘과 키를 견주는 숲이 우거져 있다면 결코 지루하지 않을 터. 간혹 산행을 마치고 하산 중인 산행객 몇몇을 지나칠 뿐, 평일 뱀사골 코스는 적막하고 고요하다.
달달달, 눈길을 달리는 모터 소리가 들린다. 붉은 편지상자와 빨간 모자가 선명한 집배원의 오토바이다. 그가 가는 곳은 당연히 와운일테고, 그 마을에 전해질 편지라곤 고작 청구서나 무의미한 인쇄물이 전부겠지만, 편지를 전하는 사람이나 그로부터 편지를 전해 받는 마을 주민이나 모두 행복하고 따뜻하길 바래본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 대신, 손으로 꾹꾹 다이얼만 누르면 세계 어디든 소통 가능한 세상이니까…. 취재진이 와운마을에 닿기도 전에 집배원은 조금 전보다 더 가벼워진 몸으로 우리 곁을 지나 다시 반선의 반듯한 길로 사라진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발행한 안내책자에는 “1천3백여 년 전 ‘송림사’라는 절에서 해마다 칠월칠석날 법력이 높은 승려 한 사람을 뽑아 선인대에서 불공을 드리면 신선이 된다는 행사가 있었다. 매년 이어지는 이 행사를 이상하게 여긴 고승이 그 해에 뽑힌 승려의 옷자락에 독을 묻혀 올려 보냈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과 선인대에 가보니 이무기가 승려를 삼키지 못하고 죽어 있었다. 이것을 보고 송림사에서 해마다 승려 한 명씩을 이무기의 제물로 바쳐온 비밀을 알게 됐다. 그 후 ‘이무기가 죽은 골짜기’라 하여 ‘뱀사골’이라 부른다.”라고 이 계곡을 설명하고 있다. 이 범상치 않은 지명에 대해선 몇 가지 설이 더 있는데 실제 뱀이 많기도 해서 와운마을에선 한때 뱀을 이용한 보양식 판매를 하기도 했단다.
신라시대 송림사 정진스님이 수도 및 기거했다는 바위 동굴 ‘석실’을 지나 반선에서 2.2㎞를 지나면 해발 550m인 요룡대에 닿는다. 요룡대란 이름은 ‘바위의 모습이 마치 용이 승천하려고 머리를 흔들며 몸부림치는 듯하다’해서 붙여진 이름. 화장실 건물이 있는 요룡대에서 ‘와운교’를 건너면 본격적인 뱀사골 등산로가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 계단을 올라 6.8㎞를 더 진행하면 뱀사골대피소에 닿고, 그 대피소 위에서 다시 200m를 오르면 지리산 주능선 화개재에 닿는다. 화개재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과 경계로, 여기서 서쪽은 노고단이고, 왼쪽은 토끼봉 넘어 천왕봉으로 이어진다. 와운으로 가려면 등산로를 무시하고 너른 시멘트 길을 따라야 한다.
요룡대에서 올라섰으니 와운마을의 고도는 못 줘도 600m는 될 법하다. 오죽하면 지명도 구름이 누워서 지난다는 와운(臥雲)…. 구불구불 산자락 대신 계곡을 끼고 오른 터라 몸이 느끼는 높이는 사실 그보다 훨씬 낮아서 마을만 뚝 떼어놓고 보면 그렇게 높은 산중마을임을 쉽게 실감하지 못한다. 다만 뱀사골 본류는 물론 주능선 명선봉 어귀에서 발원한 와운골을 곁에 두었으니 여느 첩첩 산중턱 마을과는 달리 찾는 이가 많고, 따라서 고즈넉한 풍경보단 민박 간판을 내건 2층 집들도 제법 눈에 띄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와운마을을 대표하는 건 계곡만이 아니다.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된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숭앙 받으며 주민들을 비롯 관광객들에게까지 사랑 받고 있는 것. 흔히 ‘천년송’으로 통하는 와운의 소나무는 일명 ‘할머니 소나무’로 불리는데, 여기서 20m쯤 떨어진 곳에 그보다 체구가 작은 ‘할아버지 소나무’가 한 그루 더 있다. 와운마을에서는 소나무 바람을 태아에게 들려주는 솔바람 태교가 전해오며, 매년 정월 초사흘 나무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천년송에 서면 서쪽 끝으로 서북릉 중심축 정령치휴게소가 아득하게 보이고, 가깝게는 지리산과 이 나무에 기대어 사는 와운의 집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건물은 많고 다양하지만 가구수는 겨우 10여 집. 쓸쓸한 마을엔 눈을 쓸어내는 비질 소리와 낯선 손님을 향해 서럽게 짖어대는 개들뿐이다. 소나무가 들려주는 신비한 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오늘은 유독 바람도 잦고 햇볕도 포근하다.
4대째 와운 지키는 정 할아버지
와운마을에 사시는 정민석 할아버지 댁 마루 안으로 한겨울 오후 햇살이 기분 좋게 쏟아지고 있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김정운(67세) 할머니와 이웃에 계신 목사님까지 따스한 햇살을 등뒤로 받으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가끔 창 밖을 바라보며 마른 기침을 뱉는 정 할아버지는 여순사건(10.19사건)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고개를 내저으셨다. 구례 문수리 영암촌에서 조삼남(86세) 할머니를 통해 들었던 그때의 사건들은 구례든 남원이든, 지리산자락 민초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그어댄 모양이다.
1948년 10월 19일 밤, 여수 주둔의 국군 14연대가, 같은 해 4월 3일 발생한 제주 4.3사건의 진압에 투입되는 것에 반발해, 김지회•홍순석 중위 등 좌익계통 군인들의 선동으로 일어난 사건. 대부분 진압군에 의해 사살되거나 투항했고, 일부는 지리산으로 도주해 빨치산과 합류한 것으로 전해지는 그때 그 슬픈 역사 한 토막.
“마을 전체가 여순사건 때 소개(疏開) 당했어요. 아마 이 인근에선 와운이 첫 번째일거라. 아홉사리(성삼재)를 넘어온 군인들이 이 마을로 들어왔거든. 총 무서운 줄 모르던 동네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 그나마 우리 가족은 일제 때 총의 위력을 보았던 아버지 덕분에 살았거든. 솜이불을 덮고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거나 나락 가마니를 쟁여서 그 뒤에 숨기도 했어요. 총알이 그건 뚫지를 못 했으니께. 낮에는 군인, 밤에는 인민군 천지였지. 사상이 뭔지도 모르던 순진한 산골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군인들에 의해 몰살 당한 일도 많아. 세 살 먹은 어린애부터 여든이 넘은 노인네까지 가리질 않았어. 바위에 낑겨숨어 산 사람도 있고. 말을 하자면 끝이 없지.”
정 할아버지는 아직도 ‘딱꿍총’을 기억한다. 여기서 ‘딱’하고 쏘면 저기로 총알이 ‘꿍’하고 날아갔다는 인민군의 무기다. 남원으로 쫓겨나간 주민들은 군인이 와운골을 수복한 후에야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공부는 고사하고 일만 하던 시절, 보리타작을 할 때면 찬물에 간장을 섞어 마시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당시 장골의 하루 일당이 쌀 한 되였지만 그것도 형편이 좋을 때였지, 닷새 반을 일하고 겨우 밀가루 한 포대를 받아온 궁색한 살림이었다. 밀가루에 쑥과 소나무 껍질 등을 섞어 먹었다는 정 할아버지는 “그런 세상이 안 돌아와야 할텐데….” 여전히 근심이다.
실제로 최근까지 뱀사골 곳곳엔 뼈가 ‘버글버글’ 했단다. 언젠가 바위 밑에서 나란히 죽어 누운 다섯 구의 시체를 발견한 적도 있었다. 악몽 같은 고통은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이 작은 산골마을을 몹시도 괴롭혔다. 할아버지의 소원대로 다시는 겪어선 안될 일이다.
자유당 말기 때는 뱀사골 계곡 곳곳에 목재 사업이 번창했다. 명목은 후생사업이었지만 실상은 무법천지에 가까웠다. 벌목을 수시로 해댔으며 그 나무들은 철도 침목이나 숯 굽는 용도로 쓰였다. 한때는 60여 세대가 살았고 초등학교 분교까지 들어설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4대째 와운에 살고 있지만 5남 1녀인 자녀 교육을 위해 꼬박 30년간 남원에서 살았다. 멀게는 네덜란드, 가깝게는 전북 전주에 살고 있는 자녀들 모두 장성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와운으로 돌아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혹여 도시에서의 30년 세월로 이곳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은데 할아버지의 대답은 단호하고 짧다. “좋지!” 젊은 시절 아픔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준 곳이지만 그래도 결국 뼈를 묻을 곳, 마음이 가장 푸근한 곳은 어김없이 고향 차지가 되나 보다.
정 할아버지 집 뒤로 천년송이 우뚝하다.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삶을 고스란히 보았을 늙은 소나무는 한겨울 바람에도 푸른 기운이 생생하다. 천년송 비호 아래 귀한 생명을 이어온 와운의 사람들, 혹은 몹쓸 난리에 쓸쓸히 잊혀진 주민들…. 땅에 누운 자나 땅 위에 두 발을 딛는 자들 모두 나지막한 꿈을 꾸며 편안히 미소 짓는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와운마을 가는 길 서울의 경우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전주까지 온 다음 17번 국도를 따라 남원으로 진입한다. 남원에서 바래봉 철쭉군락지로 유명한 운봉읍을 거쳐 88고속도로 지리산IC가 있는 인월면을 지나 함양읍 방향을 버리고 우회전한다. 이정표를 따라 뱀사골로 가면 된다. 또는 경부고속도로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함양분기점에서 남원 방향으로 오다가 지리산IC로 나간다. 대구나 광주 역시 88고속도로 지리산IC를 이용하면 편하고, 부산에서는 진주~함양~남원 방향으로 온 다음 인월에서 뱀사골로 진입한다.
자가용일 경우 와운마을까지 한번에 갈 수 있지만 폭설이 내려 제설작업이 완료되지 않았다면 반선에 주차하고 1시간쯤 걸어야 한다. 반선~와운간 3㎞ 중 2/3 정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다. 구례(성삼재), 남원(정령치) 등과 이어진 관광도로(861번)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역시 겨울철엔 차량 통행이 어렵다. 제설작업 여부를 미리 확인하거나 미끄럼 방지용 체인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대중교통의 경우 서울에선 용산역(korail.go.kr)과 강남 센트럴시티터미널(www.easyticket.co.kr)을 이용한다. 남원 도착 후 뱀사골(반선)행 버스를 타면 되는데, 출발지가 경상도일 경우 함양에서 인월(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의 중간지점)까지 온 다음 인월에서 남원을 출발한 뱀사골행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버스를 탔을 경우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므로 걷는 시간에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 백무동과 동서울터미널(www.busnara.com)을 오가는 버스도 산내와 인월에 각각 정차한다.
와운마을에 등산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와운골을 따라 주능선 상의 연하천대피소까지 곧바로 오를 수 있고, 삼각고지~영원령 산행도 가능한데 현재 비법정탐방로(샛길)로 묶여 공식적인 산행이 금지돼 있다.
지리산펜션:지리산 대호펜션 063)625-4051, 010-9553-5786
천년송 비호 아래 나지막한 꿈을 꾸다.
‘설마’하는 안일한 생각 덕분에 오히려 기분 좋은 산책이 되었다. 뱀사골 깊은 골짜기 와운마을까진 차량 통행이 가능한 터라 당연히 자가용으로 오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며칠 전 내린 눈은 반선집단시설지구까지만 말끔히 녹아있고 뱀사골 등산로 진입로부터 쌩쌩한 빙판길을 선보이고 있었다. 눈길에 몇 번 헛발질하던 낡은 차를 반선에 주차해두고 뽀드득뽀드득 유리창 닦는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며, 눈길 위에 발을 들여 놓는다.
길은 곧 ‘차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로 나뉘는데, 두 길은 1㎞ 후 다시 만난다. 계곡에 바짝 붙은 ‘사람이 다니는 길’은 2001년에 만든 자연관찰로다. 찻길과 자연관찰로가 합쳐지면 요룡대를 지나 다리 하나가 나온다. 이 다리를 건너 직진하면 천년송으로 유명한 와운마을, 우리가 가야 할 목적지다
와운마을 가는 길과 천년송
식당가가 밀집해 있는 반선에서 와운은 약 3㎞. 평상시엔 배낭을 메고도 30분 남짓이면 충분하지만 이번처럼 폭설이 내린 날엔 1시간은 족히 걸어야 마을에 닿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길이 뱀사골 산행 초입이고, 따라서 좌측엔 ‘한국의 명수’로 꼽히는 청류가 흐르고, 하늘과 키를 견주는 숲이 우거져 있다면 결코 지루하지 않을 터. 간혹 산행을 마치고 하산 중인 산행객 몇몇을 지나칠 뿐, 평일 뱀사골 코스는 적막하고 고요하다.
달달달, 눈길을 달리는 모터 소리가 들린다. 붉은 편지상자와 빨간 모자가 선명한 집배원의 오토바이다. 그가 가는 곳은 당연히 와운일테고, 그 마을에 전해질 편지라곤 고작 청구서나 무의미한 인쇄물이 전부겠지만, 편지를 전하는 사람이나 그로부터 편지를 전해 받는 마을 주민이나 모두 행복하고 따뜻하길 바래본다.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 대신, 손으로 꾹꾹 다이얼만 누르면 세계 어디든 소통 가능한 세상이니까…. 취재진이 와운마을에 닿기도 전에 집배원은 조금 전보다 더 가벼워진 몸으로 우리 곁을 지나 다시 반선의 반듯한 길로 사라진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발행한 안내책자에는 “1천3백여 년 전 ‘송림사’라는 절에서 해마다 칠월칠석날 법력이 높은 승려 한 사람을 뽑아 선인대에서 불공을 드리면 신선이 된다는 행사가 있었다. 매년 이어지는 이 행사를 이상하게 여긴 고승이 그 해에 뽑힌 승려의 옷자락에 독을 묻혀 올려 보냈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과 선인대에 가보니 이무기가 승려를 삼키지 못하고 죽어 있었다. 이것을 보고 송림사에서 해마다 승려 한 명씩을 이무기의 제물로 바쳐온 비밀을 알게 됐다. 그 후 ‘이무기가 죽은 골짜기’라 하여 ‘뱀사골’이라 부른다.”라고 이 계곡을 설명하고 있다. 이 범상치 않은 지명에 대해선 몇 가지 설이 더 있는데 실제 뱀이 많기도 해서 와운마을에선 한때 뱀을 이용한 보양식 판매를 하기도 했단다.
신라시대 송림사 정진스님이 수도 및 기거했다는 바위 동굴 ‘석실’을 지나 반선에서 2.2㎞를 지나면 해발 550m인 요룡대에 닿는다. 요룡대란 이름은 ‘바위의 모습이 마치 용이 승천하려고 머리를 흔들며 몸부림치는 듯하다’해서 붙여진 이름. 화장실 건물이 있는 요룡대에서 ‘와운교’를 건너면 본격적인 뱀사골 등산로가 시작된다. 다리를 건너 오른쪽 계단을 올라 6.8㎞를 더 진행하면 뱀사골대피소에 닿고, 그 대피소 위에서 다시 200m를 오르면 지리산 주능선 화개재에 닿는다. 화개재는 경남 하동군 화개면과 경계로, 여기서 서쪽은 노고단이고, 왼쪽은 토끼봉 넘어 천왕봉으로 이어진다. 와운으로 가려면 등산로를 무시하고 너른 시멘트 길을 따라야 한다.
요룡대에서 올라섰으니 와운마을의 고도는 못 줘도 600m는 될 법하다. 오죽하면 지명도 구름이 누워서 지난다는 와운(臥雲)…. 구불구불 산자락 대신 계곡을 끼고 오른 터라 몸이 느끼는 높이는 사실 그보다 훨씬 낮아서 마을만 뚝 떼어놓고 보면 그렇게 높은 산중마을임을 쉽게 실감하지 못한다. 다만 뱀사골 본류는 물론 주능선 명선봉 어귀에서 발원한 와운골을 곁에 두었으니 여느 첩첩 산중턱 마을과는 달리 찾는 이가 많고, 따라서 고즈넉한 풍경보단 민박 간판을 내건 2층 집들도 제법 눈에 띄어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와운마을을 대표하는 건 계곡만이 아니다. 천연기념물 제424호로 지정된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마을의 수호신으로 숭앙 받으며 주민들을 비롯 관광객들에게까지 사랑 받고 있는 것. 흔히 ‘천년송’으로 통하는 와운의 소나무는 일명 ‘할머니 소나무’로 불리는데, 여기서 20m쯤 떨어진 곳에 그보다 체구가 작은 ‘할아버지 소나무’가 한 그루 더 있다. 와운마을에서는 소나무 바람을 태아에게 들려주는 솔바람 태교가 전해오며, 매년 정월 초사흘 나무에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천년송에 서면 서쪽 끝으로 서북릉 중심축 정령치휴게소가 아득하게 보이고, 가깝게는 지리산과 이 나무에 기대어 사는 와운의 집들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건물은 많고 다양하지만 가구수는 겨우 10여 집. 쓸쓸한 마을엔 눈을 쓸어내는 비질 소리와 낯선 손님을 향해 서럽게 짖어대는 개들뿐이다. 소나무가 들려주는 신비한 소리를 듣고 싶었지만 오늘은 유독 바람도 잦고 햇볕도 포근하다.
4대째 와운 지키는 정 할아버지
와운마을에 사시는 정민석 할아버지 댁 마루 안으로 한겨울 오후 햇살이 기분 좋게 쏟아지고 있었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온 김정운(67세) 할머니와 이웃에 계신 목사님까지 따스한 햇살을 등뒤로 받으며 두런두런 이야기꽃을 피운다. 가끔 창 밖을 바라보며 마른 기침을 뱉는 정 할아버지는 여순사건(10.19사건) 이야기를 하실 때마다 고개를 내저으셨다. 구례 문수리 영암촌에서 조삼남(86세) 할머니를 통해 들었던 그때의 사건들은 구례든 남원이든, 지리산자락 민초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그어댄 모양이다.
1948년 10월 19일 밤, 여수 주둔의 국군 14연대가, 같은 해 4월 3일 발생한 제주 4.3사건의 진압에 투입되는 것에 반발해, 김지회•홍순석 중위 등 좌익계통 군인들의 선동으로 일어난 사건. 대부분 진압군에 의해 사살되거나 투항했고, 일부는 지리산으로 도주해 빨치산과 합류한 것으로 전해지는 그때 그 슬픈 역사 한 토막.
“마을 전체가 여순사건 때 소개(疏開) 당했어요. 아마 이 인근에선 와운이 첫 번째일거라. 아홉사리(성삼재)를 넘어온 군인들이 이 마을로 들어왔거든. 총 무서운 줄 모르던 동네 사람들이 많이 죽었지. 그나마 우리 가족은 일제 때 총의 위력을 보았던 아버지 덕분에 살았거든. 솜이불을 덮고 방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거나 나락 가마니를 쟁여서 그 뒤에 숨기도 했어요. 총알이 그건 뚫지를 못 했으니께. 낮에는 군인, 밤에는 인민군 천지였지. 사상이 뭔지도 모르던 순진한 산골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군인들에 의해 몰살 당한 일도 많아. 세 살 먹은 어린애부터 여든이 넘은 노인네까지 가리질 않았어. 바위에 낑겨숨어 산 사람도 있고. 말을 하자면 끝이 없지.”
정 할아버지는 아직도 ‘딱꿍총’을 기억한다. 여기서 ‘딱’하고 쏘면 저기로 총알이 ‘꿍’하고 날아갔다는 인민군의 무기다. 남원으로 쫓겨나간 주민들은 군인이 와운골을 수복한 후에야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공부는 고사하고 일만 하던 시절, 보리타작을 할 때면 찬물에 간장을 섞어 마시는 일이 다반사였다. 그 당시 장골의 하루 일당이 쌀 한 되였지만 그것도 형편이 좋을 때였지, 닷새 반을 일하고 겨우 밀가루 한 포대를 받아온 궁색한 살림이었다. 밀가루에 쑥과 소나무 껍질 등을 섞어 먹었다는 정 할아버지는 “그런 세상이 안 돌아와야 할텐데….” 여전히 근심이다.
실제로 최근까지 뱀사골 곳곳엔 뼈가 ‘버글버글’ 했단다. 언젠가 바위 밑에서 나란히 죽어 누운 다섯 구의 시체를 발견한 적도 있었다. 악몽 같은 고통은 여순사건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이 작은 산골마을을 몹시도 괴롭혔다. 할아버지의 소원대로 다시는 겪어선 안될 일이다.
자유당 말기 때는 뱀사골 계곡 곳곳에 목재 사업이 번창했다. 명목은 후생사업이었지만 실상은 무법천지에 가까웠다. 벌목을 수시로 해댔으며 그 나무들은 철도 침목이나 숯 굽는 용도로 쓰였다. 한때는 60여 세대가 살았고 초등학교 분교까지 들어설 정도였다.
할아버지는 4대째 와운에 살고 있지만 5남 1녀인 자녀 교육을 위해 꼬박 30년간 남원에서 살았다. 멀게는 네덜란드, 가깝게는 전북 전주에 살고 있는 자녀들 모두 장성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와운으로 돌아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혹여 도시에서의 30년 세월로 이곳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까 싶은데 할아버지의 대답은 단호하고 짧다. “좋지!” 젊은 시절 아픔과 슬픔을 동시에 안겨준 곳이지만 그래도 결국 뼈를 묻을 곳, 마음이 가장 푸근한 곳은 어김없이 고향 차지가 되나 보다.
정 할아버지 집 뒤로 천년송이 우뚝하다. 할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삶을 고스란히 보았을 늙은 소나무는 한겨울 바람에도 푸른 기운이 생생하다. 천년송 비호 아래 귀한 생명을 이어온 와운의 사람들, 혹은 몹쓸 난리에 쓸쓸히 잊혀진 주민들…. 땅에 누운 자나 땅 위에 두 발을 딛는 자들 모두 나지막한 꿈을 꾸며 편안히 미소 짓는다.
전북 남원시 산내면 와운마을 가는 길 서울의 경우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전주까지 온 다음 17번 국도를 따라 남원으로 진입한다. 남원에서 바래봉 철쭉군락지로 유명한 운봉읍을 거쳐 88고속도로 지리산IC가 있는 인월면을 지나 함양읍 방향을 버리고 우회전한다. 이정표를 따라 뱀사골로 가면 된다. 또는 경부고속도로에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타고 함양분기점에서 남원 방향으로 오다가 지리산IC로 나간다. 대구나 광주 역시 88고속도로 지리산IC를 이용하면 편하고, 부산에서는 진주~함양~남원 방향으로 온 다음 인월에서 뱀사골로 진입한다.
자가용일 경우 와운마을까지 한번에 갈 수 있지만 폭설이 내려 제설작업이 완료되지 않았다면 반선에 주차하고 1시간쯤 걸어야 한다. 반선~와운간 3㎞ 중 2/3 정도는 시멘트 포장도로다. 구례(성삼재), 남원(정령치) 등과 이어진 관광도로(861번)를 이용할 수도 있지만 역시 겨울철엔 차량 통행이 어렵다. 제설작업 여부를 미리 확인하거나 미끄럼 방지용 체인을 챙겨가는 것이 좋다.
대중교통의 경우 서울에선 용산역(korail.go.kr)과 강남 센트럴시티터미널(www.easyticket.co.kr)을 이용한다. 남원 도착 후 뱀사골(반선)행 버스를 타면 되는데, 출발지가 경상도일 경우 함양에서 인월(전북 남원과 경남 함양의 중간지점)까지 온 다음 인월에서 남원을 출발한 뱀사골행 버스로 갈아타면 된다. 버스를 탔을 경우 정류장에서 내려야 하므로 걷는 시간에 여유를 두는 것이 좋다. 백무동과 동서울터미널(www.busnara.com)을 오가는 버스도 산내와 인월에 각각 정차한다.
와운마을에 등산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와운골을 따라 주능선 상의 연하천대피소까지 곧바로 오를 수 있고, 삼각고지~영원령 산행도 가능한데 현재 비법정탐방로(샛길)로 묶여 공식적인 산행이 금지돼 있다.
지리산펜션:지리산 대호펜션 063)625-4051, 010-9553-5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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