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4월 5일 목요일
지리산펜션:칠선계곡- 두지터
칠선계곡 두지터
붉은 빛으로 색칠한 산골 이야기
2005년까지 자연휴식년제로 묶여 산행이 금지된 지리산 칠선계곡은 흔히 한라산 탐라계곡, 설악의 천불동계곡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계곡으로 꼽힌다. 지리산의 알려진 계곡 중에서는 원시림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데다 약 10km의 깊고 거대한 골짜기여서 '칠선을 다녀왔냐, 혹은 그렇지 않냐'로 산꾼들의 자부심이 달라지기도 한다. 계곡 내에는 선녀탕·옥녀탕·비선담·청춘홀·칠선폭포·대륙폭포 같은 절경들이 줄줄이 이어져 있지만, 내년이 된다 해도 숨통 막히는 제약에서 쉽게 벗어나진 못할 것 같다.
지리산 최고의 원시림 칠선계곡이 자연휴식년제 적용구간이 된 덕분에 산행 들머리 추성리 주민들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어찌어찌 칠선으로 산행에 나선 사람들은 졸지에 범법자가 되어 과태료 징수라는 칼날을 맞고 있다. 곧 개방한다는 소문도 끊이질 않고 있는데, 안전산행을 위해선 모두 10여 개의 다리가 가설되어야 하고 대피소까지 만들어야 한다니, 자연을 보호하기 위한 휴식년제인지 등산객의 안전을 위해 폐쇄를 시킨 것인지는 알 수가 없다.
가락국의 기운이 서린 산마을
어쨌든 이 계곡이 자연휴식년제로 통제를 당하면서 몇몇 산행객들은 칠선의 초입 마을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열려진 등산로는 고작 2km도 안 되는 선녀탕까지. 산행이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만큼 짧지만 그 길을 오가며, 또 추성리와 두지터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오를 수 없고 보듬을 수 없는 칠선에 대한 그리움을 삭히곤 한다.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마을의 유래에 대해선 <신증동국여지승람> 함양군편 '천왕봉 고성'에 그 기록이 남아 있다. "산속에 옛 성이 있는데 일명 추성(楸城) 또는 박회성(朴回城)이라 한다. 의탄에서 5~6리 떨어졌는데 우마가 갈 수 없는 곳이다. 안에는 창고가 있고 세상에 전해오기를 신라가 백제를 방비했던 곳이라고 한다." 그외 함양군 자료에 의하면 "추성리는 지리산 천왕봉의 북쪽에 위치한 골짜기로 가락국 양왕(구형왕)이 이곳에 와서 성을 쌓고 추성이라 하였으며, 또 박회성이란 성도 있는 곳으로 두 개의 산성지가 있다."라고 되어 있다. 혹은 "추성이라고 하는 길조의 별이 이 마을에서 볼 수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또 '추자나무'라고도 불리는 호두나무가 많아서 추성리란 이름이 붙었다고도 전해진다.
가장 유력한 설은 역시 가락국 군사가 체류하면서 성을 쌓았다는 것인데, 실제로 추성리 주위로는 신라가 가락국을 침범할 때 양왕이 군마를 이끌고 이곳에 들어와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피난처로 이용했다는 성터가 남아 있다. 그외 추성과 지명이 비슷한 '성안' 마을이 있고, 칠선계곡 옆으로 양왕이 진을 쳤다는 '국(國)골'이 있다. 국골 옆의 어름터는 석빙고로 쓰였고, 두지터는 식량 창고로 이용되었단다. 지금도 이곳에선 불에 탄 쌀이 발견된다고 한다.
의탄교를 지나 우측으로 돌면 광점동과 추성리로 갈리는 삼거리가 나온다. 두지터로 가려면 오른쪽 추성 방향으로 가야 한다. 비좁은 마을 골목길을 지나고 다리를 건너면 곧 매표소가 나오는데,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에게 두지터 아무개 댁에 간다고 이야기하면 표를 끊지 않고도 입장이 가능하다. 두지터까지는 약 25분간 산길을 오른다. 차량 통행은 불가능하다.
다만 지난 여름 울퉁불퉁하고 아기자기하던 것을 다 밀어내고 장군목 언덕까지 판판한 돌길을 깔았다. 큰비 때 토사 유실도 걱정이지만 이제 곧 눈이 쌓이면 이 오르막 그리고 가파른 내리막을 어찌 오가야 할지 난감해진다. 디딜 돌덩이를 모두 밀어내고 반질반질 길을 냈으니, 아이젠과 스틱이 필요하다고 농담을 꺼낼 정도. 길옆으로 철계단을 내놓긴 했지만 너무 좁아 옹색한 느낌을 준다.
장군목에 올라서면 산기슭에 포근히 둘러싸인 두지터가 내려다보인다. 반질대던 길도 더 이상 진행을 하지 못하고 끊겨 있다. 칠선의 구비진 길을 따라 흘렀을 물줄기가 보이고 한적한 오솔길이 이어진다. 두지터에 가려면 누구나 기분 좋은 땀방울로 등줄기를 적셔야 한다. 그러고 난 후라야 두지터의 넉넉함에 안길 수 있다.
산골마을 사람들 이야기
고도 500m 안팎의 두지터는 지리산 북쪽이지만 동향이어서 아침해가 궁색한 마을은 아니다. 지난 1999년 9월 두지터로 들어온 김성언(38세)씨의 허정가(虛精家) 툇마루에 앉으면 지리산 천왕봉에서부터 흘러내린 초암릉과 두류능선과 벽송사로 내려서는 능선이 보이고, 창암능선의 기운도 등 뒤로 가깝게 내려앉는다.
현재 두지터에는 모두 다섯 가구 뿐. 그중 절반이 넘는 세 가구가 김씨처럼 객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다. 경남 하동군 화개를 거쳐 '타지인 1호'로 들어온 문상희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차(茶)의 달인. 야생녹차는 물론 지리산에서 자생하는 약초와 산열매로 차 만들기 작업에 열중이다. 그 밖의 집들은 호두농사·민박·양봉·약초 채취 등을 생계로 삼는다. 9월 말과 10월 초는 호두 열매 수확으로 가장 바쁠 때다.
울산이 고향인 김성언씨가 차도 다니지 않는 두지터 산골로 들어온 건 순전히 지리산이 좋아서였다. 두지터 주민이 되기 전까지 약 1년간은 미친 듯이 지리산을 헤집고 다녔다. 심지어 토굴생활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2년 전 봄, 본격적으로 두지터에 들어와 제일 먼저 집수리에 들어갔다. 허물어진 집을 손보는 데도 무려 반 년의 시간이 걸렸다는데, 모든 걸 지게로 지고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칠선이 자연휴식년제로 묶이면서 산행객들의 발길은 한없이 뜸하지만 김씨의 허정가는 산꾼들을 맞고 보내는 일로 주말이 분주하다. 민박을 해 돈을 벌려면 손님들이 훨씬 많아야 할텐데도 그이는 두지터에 살아 좋은 점을 "사람 접할 기회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연에서 자란 것을 그대로 섭취하는 것도 한몫. '웰빙 웰빙' 노래를 부르는 세상이지만 이곳 주민들에겐 그런 단어조차도 생소하다. 음식물에 인공 조미료는 전혀 넣지 않을 정도.
단점은 의외로 간단하다. 굳이 오지마을로 들어온 김성언씨지만 집수리에 필요한 자재에서 가전제품까지 모든 것을 지게로 올려야 하는 게 가장 힘들다고. 민박을 해야 하니 커다란 냉장고도 이불을 빨아줄 세탁기도 없어선 안 된다. 그가 아닌 손님들을 위해서다.
두지터의 겨울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장작을 패고, LPG 가스와 쌀을 미리 사두고, 동치미를 포함한 김장도 곧 담근다. 여느 곳보다 일찍 가을을 맞고 겨울을 맞을 두지터, 이곳에서 바라보는 지리산의 붉은 단풍과 가을이 떠나고 난 후의 설국을 기약해도 좋다. 온 세상이 하얗게 눈에 덮인 날, 아궁이에 장작이 타고 굴뚝으로 메케한 연기가 흩어지는 풍경은 꼭 산행이 아니어도 몸과 마음에 활력을 심어줄 것이다.
두지터 가는 길
두지터로 가려면 경남 함양군으로 가야 한다. 서울 서초동 남부터미널(www.nambuterminal.co.kr)에 함양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함양까지는 약 4시간 걸리고 요금은 1만6300원이다. 동서울터미널(www.busnara.com)에는 함양을 거쳐 백무동까지 가는 버스가 있다. 이 버스를 타고 마천에서 내린 다음 함양에서 출발한 추성리행 군내버스로 갈아탄다. 요금은 백무동까지가 1만9300원이고, 3시간 30분정도 걸린다. 문의 (주)함양지리산고속 055-963-3745
지리산펜션:지리산 대호펜션 063)625-4051, 010-9553-5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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