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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일 금요일

지리산펜션:구례-문수사










조금씩 봄의 향기가 날리기 시작하는 들녘. 햇살도 나긋나긋하게 들을쓰다듬고 오후의 햇살에 졸음이 몰려온다. 지난 여름내 세상이 제 것 인양 호령하던 뜨거운 태양도 이젠 제법 온순해졌다. 가을볕으로 벼이삭은무거워져 고개를 수그리고, 곡식들은 가을걷이를 앞두고 태양의 마지막 에너지를 받아 더 알차게 영글어 간다. 가을 들녘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마음이 넉넉해진다.

문수사 들어가는 길. 어느새 개나리가 한창이다. 산길은 점점 높아져 섬진강이 한참 아래쪽에 보인다. 지리산 자락이라 산이 높고도 깊다. 한참을 들어가도 절은 보일 줄 모른다. 하동에서 구례로 가는 국도 변에서'문수사 7㎞'표지를 보고 잠깐 들러볼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선 길이 이렇게 험할 줄은 몰랐던 것.

 국도에서 3㎞ 정도까지는 아스팔트가 잘 깔렸지만 그 이후부터는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길 왼쪽으로는 산비탈이 가파르고, 오른쪽으로는 낭떠러지가 바로 붙어 있는데 그 아래 계곡이 흐른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려 문수리 저수지에 이르기까지 30여리에 달하는 긴 덕은내 계곡이다.

 계곡 오른쪽으로는 가파른 경사지에 집이 몇 채 들어서 있고 그 좁은 공간을 이용해 계단식 논을 만들어 놓았다. 다랑이 논에 위태롭게 심어진 벼도 조금씩 익어 가는지 이삭부분에 노란빛을 품고 있다.

 노란 봄의빛은 벼이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양지바른 곳에 뿌리를 둔 나무에도 짙은 녹음은 조금씩 옅어지고 가지 끝에서부터 노랗고,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대는 찬바람을 며칠만 더 맞으면 금새 여름이 짙어질 것만 같다.

 덕은내 계곡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는 지리산 왕시루봉, 서쪽으로는 형제봉이 높다. 굽이굽이 가파른 산길을 달리다 나타나는 마지막 동네가바로 문수리다. 이 마을은 옛날 여순반란사건에서 남은 남부군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던 빨치산의 통로였다고 한다.

 행정구역으로는 모두 문수리로 통하지만 마을은 위치에 따라 밤재, 불당, 중대, 상죽 등으로 불린다. 밤나무가 많아서 밤재, 사찰이 있었다해서 불당 하는 식으로 그 마을의 특징에 따라 붙은 이름이 정겹다.

 중대마을에서는 밤과 벌꿀을 주로 한다. 밤재 역시 밤이 많이 나고 지리산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고로쇠 약수 또한 농가수입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고로쇠나무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알칼리성 이온음료인데 위장병이나 신경통, 관절염, 미용에 효과가 있다고. 해발 1천미터 산중에서 자라는 고로쇠나무에서 채취한 것이니 만큼 깨끗하고 맛도 좋다.

 마지막 마을인 밤재 마을 앞 계곡을 건너니 길은 더욱 험하다. 초보 운전자는 차를 가지고 올라갈 생각을 않는 것이 더 나을 정도. 오르는 길옆으로 계곡이 계속 따라온다. 이름 없는 작은 폭포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산이 깊어서인지 가을로 접어든 지금도 물이 많다. 가파른 길을 1.5㎞정도 오르니 드디어 문수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문수사는 전형적인 수도 사찰이다. 외래객의 방문이 드문 편이며 산중깊숙이 위치해 있어 스님들이 참선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곳이다. 예부터원효대사를 비롯하여 이름난 스님들이 이곳에서 수행을 했다고. 지금도 조용한 절간은 승려뿐만 아니라 잠시 방문한 여행자들에게도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에 안성맞춤이다.

 문수사 입구에 차를 주차시키고 절 마당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왕시루봉의 늠름한 자태와 함께 지리산자락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펼쳐진다. 흘러내린 산자락은 멀리 섬진강에 가 닿는다. 높은 봉우리와 산자락, 계곡그리고 그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섬진강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절 초입에 해우소가 있고 넝쿨이 터널을 이룬 길을 지나면 요사체가 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해우소에 들어갔다가는 이상한 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바닥이 무척 깊은데 그 바닥에 검은 돼지를 기르고 있다. 돼지 덕분인지 해우소 근처에서도 냄새가 거의 없다. 요사체를 돌아서면 대웅전과 종각, 절 마당이 나타난다. 산 속에서 시작된 약수가 넘쳐흐르는 물소리가 절 마당 가득 청아하다.

 문수사 대웅전은 참으로 독특하다. 모르는 이라면 '이 절에는 대웅전이 없나?'싶을 정도. 문수사 대웅전은 삼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남아의 어느 절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풍경이다. 절을 중창하던 도중 주지스님 꿈속에 이런 모습으로 대웅전을 지으라는 계시가 있었다고. 층층이올라간 단청이며 지붕이 신비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웅전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산신각, 문수전이 나온다.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곳이라 마당도 넓지 않고 건물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것도 독특하다. 기왓장이며 평평한 돌을 놓아 만든 계단 또한 인상적이다.

 절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서쪽 형제봉 너머로 해가 진다. 파란 하늘에 몇 점 떠 있던 구름이 저녁 해를 받아 밝은 주황빛으로 물들어간다.

티 없이 맑은 저녁놀이다. 조금씩 붉어지다가 어느덧 사위어 가는 노을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 같다.

 행자승이 나와 범종을 울린다. 깊은 산 속에서 종을 치면 산자락에 이리저리 울려 소리가 더 그윽하고 멀리 간다고. 서른 세 번의 종이 울리는 동안 마음이 절로 풀어진다. 세속의 찌든 때가 저 종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듯하다.

 구례에서 하동 방면으로 19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오미리에서 문수사행 표지를 따라 꺾어 들어간다. 국도에서 문수사까지 7㎞, 20여분 소요. 문수사 바로 아래 주차장까지 길이 포장되어 있다. 절 아래 밤재 마을에 민박을 하는 집이 몇 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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