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례 문척면 오산(530.8m)을 출발,
자래봉~둥주리봉을 거쳐 광양 백운산까지 내달린 남도 산줄기 한쪽에 동해마을이 앉았다. 오산부터 치자면 5.5km, 둥주리봉에서는 4.5km
지점이 된다. 능선 틈에 껴있는 터라 볕이 드는 시간보단 그늘에 잠긴 시간이 훨씬 더 긴데 요즘 같은 계절엔 오전 11시쯤 해가 진단다. 하루
종일 볕을 쬘 수 있는 시간은 딱 2시간뿐이다.
동해는 여름철에도 모기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도 제법 재미있다. 강감찬 장군이 전국을 순찰하다 동해(당시 동구점) 정자 밑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허나 섬진강 여울소리와 모기 때문에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해 물소리는 오산 절벽으로 보내고 모기는 다른 마을로 쫓아버렸다고. 근래 들어 어쩌다 한두 마리씩 보이긴 하지만 그것도 여느 곳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당에 나와 맨몸으로 누워도 말짱하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그저 “물이 차가워서”일거라 짐작할 뿐.
마을엔 대략 45~46호가 있지만 빈집이 더러 있어 실 거주 호수는 그보다 훨씬 적다. 주로 농사를 짓는데, 순천시와 경계가 되는 곳인데다 마을엔 농사 지을 땅이 없어서 대부분 순천시 황전면에다 밭을 일군다. 농사철이면 잠만 구례에서 자고 일은 순천에서 하는 셈이다. 가뜩이나 추운데다 볕까지 짧으니 어르신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겨울 한나절을 보내곤 한다. 할머니들은 아랫목에 자리를 펴고 누웠고, 할아버지들은 동태찌개에 소주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올해부터 시행된 “못마땅한” 가족관계등록부 이야기, “해가 넘어가도 모자랄 판”인 전쟁 이야기 등등….
반세기도 더 전 ‘지리산 대장’으로 통했던 정씨의 딸이 다행히 아버지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한다. 정지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말하는 모양이다. 소설 속에 등장했던 반내골은 동해마을과 능선 하나로 이웃한 옆동네다. 소위 ‘물든 사람’이 마을에 두세 명은 있던 터라 주민들까지 몰살당한 일이 허다했다. 동해마을은 국군 12연대와 반란군 14연대가 맞서 싸운 싸움터였다. 옆 간전이나 비촌쪽은 피해가 어마어마했지만 용케 동해는 온전했다. 신월리 제비재(연치)를 파면 아직도 유해 몇 구는 나올 것이다. 그때는 여시와 까마귀떼가 시체 주변을 들끓기도 했었다. 이제는 모두 잊혀진 이야기다. “누가 적지 않으면 몰러. 후손들은 몰러.” 말끝을 흐리는 그들의 눈매엔 여전히 쓸쓸함이 가득하다.
이미 폐지된 호주제, 묻힌 과거사보다 더 괴로운 고충은 사실 다른 곳에 있다. TV 난시청 지역이란 또 다른 그늘에 묶여 20년을 살아온 것.
“노인네들 사는 곳이라 TV 보는 게 낙인데 그게 쉽지 않아요. 안테나 없이는 TV를 볼 수 없는데 그것도 개인이 설치해야 하는데다 바람이라도 크게 불면 넘어갑니다. 최근엔 구례읍에서 유선을 끌어다 보지만 1년에 호당 3만원씩 내야하고 채널도 고작 서너 개가 전부예요.”
난시청 지역임을 면에 알렸는데도 시설 지역에서 누락된 것이 못내 아쉬운 이병용(70세) 이장의 간절한 소망이다. 볕도 적은 긴긴 겨울, 60대 미만의 젊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 동해마을 주민들에겐 TV가 친구고 가족이고 이웃이다.
마을을 온통 뒤덮은 그늘을 벗어나 도로변으로 나서니 그제야 환하게 볕이 보인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동해 벚나무 가로수에 꽃이 필 날은 아직 멀었고, 비온 뒤 쏘가리 포인트로 유명하다는 동해의 강물도 지금은 한적하다. 다만 섬진강 짙푸른 물빛 끝으로 눈을 덮어쓴 노고단과 종석대만 겨울답게 아름답다.
지리산펜션:지리산 대호펜션 063)625-4051,010-9553-5786
동해는 여름철에도 모기가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도 제법 재미있다. 강감찬 장군이 전국을 순찰하다 동해(당시 동구점) 정자 밑에서 하룻밤 묵게 되었다. 허나 섬진강 여울소리와 모기 때문에 도통 잠을 이루지 못해 물소리는 오산 절벽으로 보내고 모기는 다른 마을로 쫓아버렸다고. 근래 들어 어쩌다 한두 마리씩 보이긴 하지만 그것도 여느 곳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당에 나와 맨몸으로 누워도 말짱하다고 자랑이 대단하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그저 “물이 차가워서”일거라 짐작할 뿐.
마을엔 대략 45~46호가 있지만 빈집이 더러 있어 실 거주 호수는 그보다 훨씬 적다. 주로 농사를 짓는데, 순천시와 경계가 되는 곳인데다 마을엔 농사 지을 땅이 없어서 대부분 순천시 황전면에다 밭을 일군다. 농사철이면 잠만 구례에서 자고 일은 순천에서 하는 셈이다. 가뜩이나 추운데다 볕까지 짧으니 어르신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겨울 한나절을 보내곤 한다. 할머니들은 아랫목에 자리를 펴고 누웠고, 할아버지들은 동태찌개에 소주를 두고 설전을 벌인다. 올해부터 시행된 “못마땅한” 가족관계등록부 이야기, “해가 넘어가도 모자랄 판”인 전쟁 이야기 등등….
반세기도 더 전 ‘지리산 대장’으로 통했던 정씨의 딸이 다행히 아버지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 한다. 정지아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을 말하는 모양이다. 소설 속에 등장했던 반내골은 동해마을과 능선 하나로 이웃한 옆동네다. 소위 ‘물든 사람’이 마을에 두세 명은 있던 터라 주민들까지 몰살당한 일이 허다했다. 동해마을은 국군 12연대와 반란군 14연대가 맞서 싸운 싸움터였다. 옆 간전이나 비촌쪽은 피해가 어마어마했지만 용케 동해는 온전했다. 신월리 제비재(연치)를 파면 아직도 유해 몇 구는 나올 것이다. 그때는 여시와 까마귀떼가 시체 주변을 들끓기도 했었다. 이제는 모두 잊혀진 이야기다. “누가 적지 않으면 몰러. 후손들은 몰러.” 말끝을 흐리는 그들의 눈매엔 여전히 쓸쓸함이 가득하다.
이미 폐지된 호주제, 묻힌 과거사보다 더 괴로운 고충은 사실 다른 곳에 있다. TV 난시청 지역이란 또 다른 그늘에 묶여 20년을 살아온 것.
“노인네들 사는 곳이라 TV 보는 게 낙인데 그게 쉽지 않아요. 안테나 없이는 TV를 볼 수 없는데 그것도 개인이 설치해야 하는데다 바람이라도 크게 불면 넘어갑니다. 최근엔 구례읍에서 유선을 끌어다 보지만 1년에 호당 3만원씩 내야하고 채널도 고작 서너 개가 전부예요.”
난시청 지역임을 면에 알렸는데도 시설 지역에서 누락된 것이 못내 아쉬운 이병용(70세) 이장의 간절한 소망이다. 볕도 적은 긴긴 겨울, 60대 미만의 젊은 사람은 하나도 없는 동해마을 주민들에겐 TV가 친구고 가족이고 이웃이다.
마을을 온통 뒤덮은 그늘을 벗어나 도로변으로 나서니 그제야 환하게 볕이 보인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동해 벚나무 가로수에 꽃이 필 날은 아직 멀었고, 비온 뒤 쏘가리 포인트로 유명하다는 동해의 강물도 지금은 한적하다. 다만 섬진강 짙푸른 물빛 끝으로 눈을 덮어쓴 노고단과 종석대만 겨울답게 아름답다.
지리산펜션:지리산 대호펜션 063)625-4051,010-9553-57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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