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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17일 일요일

지리산펜션:무주-적상산사고















정의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적상 산성(赤裳山城) 안에 설치했던 사고. 북방에 위치한 묘향산사고(妙香山史庫)가 후금의 위협뿐만 아니라 사고 관리의 소홀로 소장 도서가 망실(亡失)될 우려가 있었다. 따라서 다른 적당한 장소에 실록을 이치(移置)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내용

1610년(광해군 2) 순안어사(巡按御史) 최현(崔睍)과 무주현감 이유경(李有慶)의 요청에 따라 사관을 적상산에 보내 땅 모양을 살피게 하고 산성을 수리하게 하였다. 1614년 적상산성 안에 실록전(實錄殿)을 건립했으며, 4년 뒤인 1618년 9월부터 실록이 봉안되기 시작, 1633년(인조 11)까지 묘향산사고의 실록을 모두 이곳으로 옮겨서 보관하였다.

1641년에는 선원각(璿源閣)을 건립하고 ≪선원록 璿源錄≫을 봉안하여 적상산사고는 완전한 사고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병자호란 때 5사고 중 마니산사고(摩尼山史庫)의 실록이 산실(散失)되어 이를 다시 보완하는 작업이 1666년(현종 7)에 시작되었다.

이 때 적상산 사고본을 근거로 등사·교정 작업을 했는데 3도 유생(三道儒生)이 300명이나 동원되었다. 이 사고의 설치를 계기로 사고의 수호와 산성 수비를 강화하기 위해 승병을 모집하고 수호 사찰(守護寺刹)을 건립하는 등 여러 방안이 강구되었다.

사고 설치 직후에는 승려 덕웅(德雄)이 승병 92명을 모집해 산성을 수축하는 한편, 분번(分番)으로 사각(史閣)을 수호하였다. 특히 정묘호란 때에는 사고를 지킬 사람이 없어 승려 상훈(尙訓)이 사고의 서책을 성밖의 석굴(石窟)로 옮겨 보관하다가 전쟁이 끝난 뒤 사고에 다시 봉안하였다. 사고의 수호가 이와 같이 어려워지자 1643년 산성 안에 호국사(護國寺)를 창건해 수호 사찰로 하였다.

조선 말기에 사고가 퇴락해 1872년(고종 9) 실록전과 선원각을 개수했으며, 1902년에는 대대적인 개수 공사를 하였다. 1910년 조선의 주권을 강탈한 일제는 실록을 구황실문고(舊皇室文庫)로 편입해 장서각에 보관시켰다. 그러나 산질(散秩)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고, 그 뒤 6·25동란 중에 분실되어버렸다. 실록전과 선원각의 건물이 언제 어떻게 없어졌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선원각은 부근 안국사(安國寺) 경내로 옮겨져 천불전(千佛殿)으로 전해오고 있다 

2012년 6월 14일 목요일

지리산펜션:하동-고소산성






고소산성

먼 옛날 삼국시대의 아픈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는 고소산성(姑蘇山城)은 정확한 축조시기 등에 관한 유래는 전해지지 않고 있으나 천연의 요충지에 위치해 있는 만큼 1000여 년 전 삼국시대 당시 이 요충지를 중심으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으리라 추측해 볼 수 있다.
지난 66년 사적 제151호로 지정된 고소산성은 하동에서 화개장터로 향하는 국도 19번을 따라 차편으로 20여분 거리로 지리산의 여맥이 형제봉에서 흘러 섬진강으로 떨어지기 직전 해발 300m에 위치해 있다.
동북으로 지리산 준령을 등지고 있으며 서남으로는 섬진강과 동정호(洞庭湖)를 발아래 둔 천혜의 요새다. 남해에서 호남으로 통하는 통로의 목을 쥐고 있는 셈이다. 이 일대가 지금은 경남과 전남의 경계지점(정확한 경계선은 화개장터를 조금 지나 불무장등 능선이 끝나는 지점이다)이듯 삼국시대 당시는 신라와 백제의 접전지역이었다 한다.
삼국시대 당시 요충지임에 틀림없는 이곳에 성이 축조된다는 건 매우 당연한 이치다. 산성 둘레는 800여m. 장방형(長方形)바위를 견고하게 쌓아올린 석성(石城)이다. 남북 양쪽에 성문을 설치했으며 성벽 높이는 3.5∼4.5m로 아래폭이 6m, 상면폭이 2m인 사다리 모양이다. 성의 축조 유래는 다양하게 전해지고 있는데 하동군지에 따르면 신라의 김춘추 장군이 백제를 공격할 목적으로 당나라에 원병을 청해 축조, 나당연합군의 주둔기지로 활용하면서 백제와 왜(倭)의 협력을 차단시켰다고 전한다. 특히 이곳에서 소정방(蘇定方)군이 주둔, 주력부대를 지휘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 설은 당시 나당연합군과 주력부대가 금강을 침공할 때 소정방이 군을 지휘했던 점과 악양 일대의 지명이 중국의 그것과 흡사해 산성이름에 소정방을 끌어들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신빙성이 덜하다는 주장이 있다. 오히려 신라가 백제와 왜(倭)와의 협력을 차단할 목적으로 그 이전에 산성을 축조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무튼 고소산성은 신라인에 의해 백제를 견제 또는 침공할 목적으로 축조했음을 엿볼 수 있다.
이외에 고소산성의 축조 유래는 소송이(蘇松伊)에 얽힌 전설도 전해져 오고 있다. 蘇장군의 부친과 모친 경주 김씨는 후손이 없어 걱정을 하던 중 어느 날 김씨 꿈에 신령이 나타나 康州(지금의 진주) 부근으로 이사를 하면 후손을 볼 것이라고 하여 그대로 했더니 아들을 얻었다 한다. 그후 蘇장군이 성장, 외성(外城)을 쌓으라는 어머니 金씨의 명에 따라 산성을 축조했는데 蘇장군의 성씨를 따 고소산성이라 부른다는 전설이다.
형제봉 기슭의 고소산성에 얽힌 역사의 애환과 설화 못지않게 형제봉 주변에서 지리산 자락에서 가장 비옥한 대지인 평사리 들녘을 주무대로 한 소설 토지의 배경이 서려있음을 음미해 볼 수 있어 찾는 이들을 더욱 흥미롭게 하고 있다

2012년 6월 13일 수요일

지리산펜션:순창 고추장마을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

요약
전라북도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에 있는 마을로 전통장류산업발전을 위해 조성되었다.


본문
순창군이 전통장류(醬類)산업을 활성화시키고 순창고추장의 명성과 전통적 제조 비법을 이어가기 위해 계획적으로 조성한 마을로, 3년여의 조성 기간을 거쳐 1997년에 생겨났다. 순창군 곳곳에 흩어져 있던 고추장 제조 장인들을 아미산 자락에 있는 순창군 순창읍 백산리 265번지 일대에 모아 전통고추장 민속마을을 형성시킨 것이다.

마을의 면적은 8만 4,403㎡이며 2007년 현재 46가구, 149명이 거주하고 있다. 계획적으로 형성된 마을답게 도로와 골목이 현대식으로 반듯하게 구획되어 있지만 가옥을 모두 전통한옥으로 짓고, 토종 소나무를 가로수로 조성하여 민속마을을 방불케 한다. 마을 전체가 고추장판매장이자 관광지로, 집집마다 마당에 커다란 고추장과 장아찌 항아리가 가득하고, 처마에는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순창전통고추장민속마을에서는 각 호의 고추장 제조 기능인들이 저마다의 고추장을 생산하여 판매하며, 재래식된장과 간장, 감·깻잎·오이·마늘·고추·도라지·더덕·매실 등으로 만든 절임류(장아찌) 20여 종을 취급하는데 가격은 집집마다 모두 동일하다. 2007년 현재 연간 매출액은 330억 원에 이르는데 현장판매는 인터넷 판매를 통해 매출을 올리고 있다. 마을은 행정안전부에 의해 정보화마을로 지정되어 있다. 마을에서 제조되는 장류와 절임류의 품질관리는 순창식품과학연구소에서 맡는다.

2004년에는 대한민국 제1호 장류산업특구로 지정되었다. 이에 순창군은 2010년까지 민속마을 일대의 34만 2,479㎡ 지역을 국내 최대 규모의 ‘장류(醬類)밸리’로 조성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2008년 현재 민속마을 주변에는 순창장류박물관, 순창장류체험관, 순창장류연구소가 들어서 있다.

전통장류의 역사와 장류 관련 유물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순창장류박물관은 2007년 11월 개관하였으며 부지면적 8,439㎡, 건축총면적 1,513㎡의 지상 2층 규모로, 상설·기획전시실, 야외광장, 데크가든 등으로 이루어졌다. 순창장류체험관은 순창전통고추장과 고추장을 이용한 요리를 만들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숙박시설을 갖추었으며, 순창장류연구소에서는 발효식품과 장류분야를 연구하고, 장류산업발전을 위한 지원을 한다. 해마다 가을에는 민속마을 일원에서 순창장류축제가 열린다

2012년 6월 12일 화요일

지리산펜션:정읍-우화정






우화정 [羽化亭]

전라북도 정읍시 내장동에 있는 명소.

본문
내장산(內藏山) 국립공원 내에 있다. 정자에 날개가 돋아 승천(昇天)하였다는 전설이 있어 ‘우화정(羽化亭)’이라고 부른다. 이곳은 1482년 무렵 내장산성이 있었던 곳으로 승군과 왜적이 격렬한 전투를 벌인 장소이다. 오늘날에는 당시의 시설은 남아 있지 않고 연못 가운데 자연석과 콘크리트로 바닥을 다지고 흰색기둥에 파란 지붕을 올린 정자 형태의 건물이 세워져 있다. 연못가에는 당단풍, 수양버들, 두릅나무, 산벚, 개나리, 산수유, 복자기 나무 등이 자라고 있어 가을이면 맑은 연못에 울긋불긋한 단풍이 비쳐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한다. 내장산국립공원 관리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가까이에 내장사, 금선폭포, 용굴, 정촌서래목석원, 동학혁명100주년기념탑 등의 관광명소가 있다.

2012년 6월 11일 월요일

지리산펜션:지리산 옛길산행(화개동천)









지리산 화개 동천의 옛길을 따라서...


(산책길)
바람과 함께 비가 조금 많이 내리고 있는 아침이다
이런 날이면 의례 산으로는 가지않고 편하게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잡아
집을 나서는데, 오늘은 화개 동천의 수달래꽃 관광이다..
쌍계사를 지나 , 신흥마을의 신흥교에 주차를 하고,
우중 산행 준비를 하여 신흥마을에서 의신마을로 가는 옛길로 들어선다ᆞ
물살이 거세게 흘러 내리는 화개 동천..
작은 실계곡을 건너갈쯤 금낭화 꽃단지가 계곡에 줄지어 보인다ᆞ
예전에 멍멍이가 무지나 짖어대던 독가의 굴뚝에는 하얀 연기가 피워오르지만,
멍멍이의 짖는 소리는 듣지 못하고 독가를 지난다ᆢ
옛길이 계곡쪽으로 붙어가면, 계곡가에는 수달래 꽃송이가 몇군데 보이고
돌에는 각기 다른 서체를 가진 각자들도 보인다ᆞ
수량이 많아 오늘은 길다란 폭포 줄기를 만들어 보이는 좌측 지계곡을 가로질러 진행하면
계곡 건너편에는 쇠점터 가옥 몇채가 보인다..
단천마을 입구를 지나면 돌담이 쌓여져 있고, 그네가 매달려 있는 독가로 들어서는데
오늘은 주인장은 없고, 문마다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ᆞ
마루에 앉아 주적 주적 내리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간식을 먹고,
다시 옛길을 이어간다ᆞ
굉음을 내며 큰폭의 폭포 물줄기를 가진 좌측 지계곡을 올라서
폭포의 아름다움을 폰카에 담는다ᆞ'
리본이 달려있는 묵은 밭을 따라서 계곡으로 붙으니,
글씨가 있는 다리 지주대 2개가 화개 동천에 놓여 있다ᆞ(지금은 사라진 다리)
길을 조금 빠꾸하여 지계곡 너들을 따라 옛길을 어어가는데,
지금부터 옛길은 작은 산죽 산길이다..
산길 수준은 조금전에 걸었던 산길과는 좋지않고,
산길도 흐릿한 곳이 자주 나온다..
어느 과수원 단지를 가로질러 나오면,
어느듯 의신마을의 출렁다리를 건너서게 된다ᆞ
의신마을 매점에 붙어있는 완행 버스시간표를 보니 ,
지금부터 45분후에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
그냥 찻길을 걸어 신흥마을로 간다...
대성교를 지날무렵 보슬비가 그친다 ᆞ
조금전에 걸었던 화개동천의 옛길을 바라보면서ᆞ
또 걸었던 그 길을 회상하면서 신흥교에 도착을 하니ᆞ
의신에서 출발한 버스가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