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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6일 수요일

지리산펜션:담양-대나무골 테마공원






















대나무골 테마공원

위치 전라남도 담양군 금성면 봉서리 산 51-1
전화번호 061-383-9291
운영시간하절기 09:00~18:30, 동절기 09:00~17:00
입장료있음
주차가능
분류숲, 자연휴양림
대나무는 주연 배우!

대나무 사이를 흐르는 바람이 낮은 환호성 같은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는 곳이다. 여느 소리와 다른 대나무의 공명음은 묘한 이질감과 새로운 느낌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담양시내에서 추월산을 찾아가는 깊은 가로수 길을 지나면 비밀의 화원인 듯 깊숙한 곳에 감추어진 대나무숲 테마공원을 만날 수 있다. 국내 최대의 대나무 집단 군락지이다. 자연적으로 생긴 공간이 아니라 자연의 풍광을 사랑하였던 한 사진작가의 20여 년 노력의 결과물이다.

오랜 시간 가꾸어진 대나무 숲은 특별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잠시 동안의 보슬비가 숲을 더욱 푸르게 만드는 봄날, 햇살 받은 대나무 숲을 찾아보자. 축축한 땅을 비집고 올라오는 죽순의 파란 신비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수많은 영화, 드라마 속 장면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대나무 숲 사이로 캠핑을 즐기면 여느 곳에서 즐길 수 없는 추억이 된다.

2012년 6월 5일 화요일

지리산펜션:순천-송광사(성철스님이 머물던곳.)


























 순천 송광사 [順天 松廣寺]

요약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松光面) 조계산(曹溪山) 서쪽에 있는 사찰.
지정번호 사적 제506호
지정일 2009년 12월 21일
소재지 전남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번지
종류/분류 사찰
크기 면적 44,297㎡

송광사 임경당 풍판 /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본문
한국의 삼보(三寶)사찰 가운데 승보(僧寶)사찰로서 유서깊은 절이다. 《송광사지(松廣寺誌)》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이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는데, 사찰의 규모는 불과 100여 칸에 지나지 않았고 승려의 수효도 겨우 30∼40명을 넘지 못하였다.

처음에 이렇게 창건된 뒤 고려 인종(仁宗) 3년(1125)에 석조(釋照)가 대찰을 세울 뜻을 품은 채 세상을 뜨자, 1197년(명종 27) 승려 수우(守愚)가 사우(寺宇) 건설을 시작하였다. 3년이 지난 뒤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 칭하고, 도(道)와 선(禪)을 닦기 시작하면서, 대찰로 중건하였다.
이 사찰을 안고 있는 조계산은 이 때까지는 송광산이라고 했는데, 보조국사 이후 조계종의 중흥도량(中興道場)이 되면서부터 조계산이라고 고쳐 불렀다. 조계종은 신라 때부터 내려오던 구산선문(九山禪門)의 총칭으로, 고려 숙종(肅宗) 2년(1097)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이 일으킨 천태종(天台宗)과 구별해 이렇게 부르기도 하였다. 그 뒤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의 지위를 굳혔다.

경내에는 이들 16 국사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국사전(國師殿)이 따로 있다. 수선사를 언제 송광사로 개칭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된 뒤 한동안 폐사 상태였는데, 뒤에 응선(應禪)을 비롯한 승려들이 복원하고 부휴(浮休)를 모셔 다시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1842년(헌종 8) 큰 화재가 일어나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삼존불(三尊佛)·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금기(金器)·대종(大鐘) 및 기타 보물과 《화엄경(華嚴經)》 장판(藏板) 약간만을 건졌다.

1922년부터 1928년까지 설월(雪月)·율암(栗庵)이 퇴락한 건물들을 중수하고, 1943∼1956년에 승려와 신도의 노력으로 차례로 복원하여 옛모습을 되찾았다. 1948년의 여수·순천사건과 6·25전쟁으로 사찰의 중심부가 불탔는데, 그후 승려 취봉(翠峰)·금당(錦堂)의 노력으로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을 복구하였다. 이어 1983년부터 1990년까지 대웅전을 비롯해 30여 동의 전각과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하여 오늘과 같은 승보종찰의 모습을 갖추었다.

조계산 내 암자로는 광원암(廣遠庵)·천자암(天子庵)·감로암(甘露庵)·부도암(浮屠庵)·불일암(佛日庵)·판와암(板瓦庵)과 근래에 건립한 오도암(悟道庵) 및 탑전(塔殿:寂光殿) 등이 있고, 56개의 말사와 수련원·성보보수교습원 등의 부설기관이 있다.

또 가장 많은 사찰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 목조삼존불감(木彫三尊佛龕:국보 42), 《고려고종제서(高麗高宗制書)》(국보 43), 국사전(國師殿:국보 56)을 비롯해 《대반열반경소(大般涅槃經疏)》(보물 90), 경질(經帙:보물 134), 경패(經牌:보물 175), 금동요령(金銅搖鈴:보물 179),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관세음보살보문품 삼현원찬과문(觀世音菩薩普門品三玄圓贊科文:보물 204),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大乘阿毘達磨雜集論疏)》(보물 205), 묘법연화경찬술(妙法蓮華經讚述:보물 206), 《금강반야경소개현초(金剛般若經疏開玄鈔)》(보물 207), 하사당(下舍堂:보물 263), 약사전(藥師殿:보물 302), 영산전(靈山殿:보물 303), 《고려문서》 즉 노비첩(奴婢帖), 수선사형지기(修禪社形止記:보물 572)가 있다. 이 밖에도 능견난사(能見難思) 등 지방문화재 8점이 있으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서첩(書帖), 영조(英祖)의 어필(御筆), 흥선대원군의 난초 족자 등 많은 문화재가 사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조계종의 발상지로서 현재는 선수행(禪修行)의 도량이며, 조계총림(曹溪叢林)이 있는 곳이다.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신평리 12번지에 있다. 2009년 12월 21일 사적 제506호로 지정되었다

2012년 6월 4일 월요일

지리산펜션:구례-화엄사











화엄사 [華嚴寺]

요약
전남 구례군 마산면(馬山面) 황전리(黃田里) 지리산 노고단(老姑壇) 서쪽에 있는 사찰.
종파 대한불교 조계종
창건자 연기
소재지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본문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창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544년(신라 진흥왕 5)에 인도 승려 연기(緣起)가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시대는 분명치 않으나 연기(煙氣)라는 승려가 세웠다고만 전하고 있다. 670년(신라 문무왕 10)에는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화엄10찰(華嚴十刹)을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이 화엄사를 중수하였다. 그리고 장육전(丈六殿)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石經)을 둘렀다고 하는데, 이때 비로소 화엄경 전래의 모태를 이루었다.

사지(寺誌)에서는 당시의 화엄사는 가람 8원(院) 81암(庵) 규모의 대사찰로 이른바 화엄 불국세계(佛國世界)를 이루었다고 한다. 신라 말기에는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수하였고 고려시대에 네 차례의 중수를 거쳐 보존되어 오다가 임진왜란 때 전소되고 승려들 또한 학살당하였다. 범종은 왜군이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섬진강을 건너다가 배가 전복되어 강에 빠졌다고 전한다. 장육전을 두르고 있던 석경은 파편이 되어 돌무더기로 쌓여져오다가 현재는 각황전(覺皇殿) 안에 일부가 보관되고 있다. 1630년(인조 8)에 벽암대사(碧巖大師)가 크게 중수를 시작하여 7년 만에 몇몇 건물을 건립, 폐허된 화엄사를 다시 일으켰고, 그 뜻을 이어받아 계파(桂波)는 각황전을 완공하였다.

대개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이 절은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主佛)로 공양한다. 주요 문화재로는 국보 제12호인 석등(石燈), 국보 제35호인 사사자삼층석탑(四獅子三層石塔), 국보 제67호인 각황전이 있으며, 보물 제132호인 동오층석탑(東五層石塔), 보물 제133호인 서오층석탑, 보물 제300호인 원통전전 사자탑(圓通殿前獅子塔), 보물 제299호인 대웅전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구층암(九層庵)·금정암(金井庵)·지장암(地藏庵

2012년 6월 1일 금요일

지리산펜션:구례-문수사










조금씩 봄의 향기가 날리기 시작하는 들녘. 햇살도 나긋나긋하게 들을쓰다듬고 오후의 햇살에 졸음이 몰려온다. 지난 여름내 세상이 제 것 인양 호령하던 뜨거운 태양도 이젠 제법 온순해졌다. 가을볕으로 벼이삭은무거워져 고개를 수그리고, 곡식들은 가을걷이를 앞두고 태양의 마지막 에너지를 받아 더 알차게 영글어 간다. 가을 들녘은

가만히 바라보기만 해도 절로 마음이 넉넉해진다.

문수사 들어가는 길. 어느새 개나리가 한창이다. 산길은 점점 높아져 섬진강이 한참 아래쪽에 보인다. 지리산 자락이라 산이 높고도 깊다. 한참을 들어가도 절은 보일 줄 모른다. 하동에서 구례로 가는 국도 변에서'문수사 7㎞'표지를 보고 잠깐 들러볼까 하는 마음으로 들어선 길이 이렇게 험할 줄은 몰랐던 것.

 국도에서 3㎞ 정도까지는 아스팔트가 잘 깔렸지만 그 이후부터는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길 왼쪽으로는 산비탈이 가파르고, 오른쪽으로는 낭떠러지가 바로 붙어 있는데 그 아래 계곡이 흐른다. 지리산에서 흘러내려 문수리 저수지에 이르기까지 30여리에 달하는 긴 덕은내 계곡이다.

 계곡 오른쪽으로는 가파른 경사지에 집이 몇 채 들어서 있고 그 좁은 공간을 이용해 계단식 논을 만들어 놓았다. 다랑이 논에 위태롭게 심어진 벼도 조금씩 익어 가는지 이삭부분에 노란빛을 품고 있다.

 노란 봄의빛은 벼이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양지바른 곳에 뿌리를 둔 나무에도 짙은 녹음은 조금씩 옅어지고 가지 끝에서부터 노랗고, 붉은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아침저녁으로 불어대는 찬바람을 며칠만 더 맞으면 금새 여름이 짙어질 것만 같다.

 덕은내 계곡을 사이에 두고 동쪽으로는 지리산 왕시루봉, 서쪽으로는 형제봉이 높다. 굽이굽이 가파른 산길을 달리다 나타나는 마지막 동네가바로 문수리다. 이 마을은 옛날 여순반란사건에서 남은 남부군들이 지리산으로 들어가던 빨치산의 통로였다고 한다.

 행정구역으로는 모두 문수리로 통하지만 마을은 위치에 따라 밤재, 불당, 중대, 상죽 등으로 불린다. 밤나무가 많아서 밤재, 사찰이 있었다해서 불당 하는 식으로 그 마을의 특징에 따라 붙은 이름이 정겹다.

 중대마을에서는 밤과 벌꿀을 주로 한다. 밤재 역시 밤이 많이 나고 지리산 특산물 가운데 하나인 고로쇠 약수 또한 농가수입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고로쇠나무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알칼리성 이온음료인데 위장병이나 신경통, 관절염, 미용에 효과가 있다고. 해발 1천미터 산중에서 자라는 고로쇠나무에서 채취한 것이니 만큼 깨끗하고 맛도 좋다.

 마지막 마을인 밤재 마을 앞 계곡을 건너니 길은 더욱 험하다. 초보 운전자는 차를 가지고 올라갈 생각을 않는 것이 더 나을 정도. 오르는 길옆으로 계곡이 계속 따라온다. 이름 없는 작은 폭포도 곳곳에 포진해 있다. 산이 깊어서인지 가을로 접어든 지금도 물이 많다. 가파른 길을 1.5㎞정도 오르니 드디어 문수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문수사는 전형적인 수도 사찰이다. 외래객의 방문이 드문 편이며 산중깊숙이 위치해 있어 스님들이 참선하기에는 아주 적절한 곳이다. 예부터원효대사를 비롯하여 이름난 스님들이 이곳에서 수행을 했다고. 지금도 조용한 절간은 승려뿐만 아니라 잠시 방문한 여행자들에게도 마음을 비우고 자신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에 안성맞춤이다.

 문수사 입구에 차를 주차시키고 절 마당을 향해 올라가다 보면 왕시루봉의 늠름한 자태와 함께 지리산자락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펼쳐진다. 흘러내린 산자락은 멀리 섬진강에 가 닿는다. 높은 봉우리와 산자락, 계곡그리고 그 아래 희미하게 보이는 섬진강이 만들어내는 풍경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절 초입에 해우소가 있고 넝쿨이 터널을 이룬 길을 지나면 요사체가 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해우소에 들어갔다가는 이상한 소리에 깜짝 놀라게 된다. 바닥이 무척 깊은데 그 바닥에 검은 돼지를 기르고 있다. 돼지 덕분인지 해우소 근처에서도 냄새가 거의 없다. 요사체를 돌아서면 대웅전과 종각, 절 마당이 나타난다. 산 속에서 시작된 약수가 넘쳐흐르는 물소리가 절 마당 가득 청아하다.

 문수사 대웅전은 참으로 독특하다. 모르는 이라면 '이 절에는 대웅전이 없나?'싶을 정도. 문수사 대웅전은 삼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동남아의 어느 절을 연상시키는 이국적인 풍경이다. 절을 중창하던 도중 주지스님 꿈속에 이런 모습으로 대웅전을 지으라는 계시가 있었다고. 층층이올라간 단청이며 지붕이 신비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웅전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산신각, 문수전이 나온다. 경사진 지형을 그대로 이용한 곳이라 마당도 넓지 않고 건물을 계단식으로 배치한 것도 독특하다. 기왓장이며 평평한 돌을 놓아 만든 계단 또한 인상적이다.

 절을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서쪽 형제봉 너머로 해가 진다. 파란 하늘에 몇 점 떠 있던 구름이 저녁 해를 받아 밝은 주황빛으로 물들어간다.

티 없이 맑은 저녁놀이다. 조금씩 붉어지다가 어느덧 사위어 가는 노을에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 같다.

 행자승이 나와 범종을 울린다. 깊은 산 속에서 종을 치면 산자락에 이리저리 울려 소리가 더 그윽하고 멀리 간다고. 서른 세 번의 종이 울리는 동안 마음이 절로 풀어진다. 세속의 찌든 때가 저 종소리와 함께 사라지는 듯하다.

 구례에서 하동 방면으로 19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오미리에서 문수사행 표지를 따라 꺾어 들어간다. 국도에서 문수사까지 7㎞, 20여분 소요. 문수사 바로 아래 주차장까지 길이 포장되어 있다. 절 아래 밤재 마을에 민박을 하는 집이 몇 채 있다.